일본 소니의 이데이 노부유키사장은 95년 사장 취임연설에서 "폭탄선언"을
했다.

"세계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화하고 있으며 디지털 시대엔 콘텐츠
(Contents)를 잡지 못하면 소니의 미래는 없다"는 것이었다.

일본의 대표적 하드웨어업체인 소니가 주력 사업방향을 콘텐츠쪽으로 돌려
잡는 순간이었다.

이데이 사장은 취임직후부터 89년 매수한 미국 컬럼비아 영화사와
소니뮤직사를 무기로 영상및 음악 콘텐츠 개발및 확보에 총력을 기울였다.

이 전략이 먹혀들어 이듬해 소니의 순익은 95년에비해 1백20% 늘어난
1천3백90억엔(11억달러)으로 치솟았다.

94년 3천억엔의 적자를 2년만에 확고한 흑자기조로 돌려놓은 것이다.

소니는 이 여세를 몰아 게임소프트 사업을 확대하고 디지털 위성방송
사업도 준비중이다.

소니가 이같이 변신을 한 이유는 간단하다.

엄청난 적자를 흑자로 돌려 놓으려면 콘텐츠같은 고부가가치 사업으로
사업방향을 선회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소니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콘텐츠는 정보화시대의 핵심산업이다.

"콘텐츠산업을 제치고 21세기를 논의하는 것은 무리"(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문화와 정보기술이 만나는 곳에 존재하는 콘텐츠산업은 이제 세계산업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기업은 모두 콘텐츠산업과 관계가 있다.

소니앤터테인먼트는 96년 84억달러의 매출을 올리며 소니그룹의 핵심사업
부문으로 자리잡았다.

루퍼트 머독이 이끄는 호주 뉴스코퍼레이션은 전세계 1백50여개의 영화
출판 언론사를 거느린 미디어왕국을 구축했다.

세계인구의 8분의 1인 7억여명이 매일 그의 회사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접하고 있다.

빌 게이츠 회장은 "방안에서 손가락 하나로 모든 정보를 얻을수 있게
만들겠다"며 컴퓨터운영소프트 외에 방송 출판 음악 등 콘텐츠산업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월트디즈니가 ABC방송을, 타임워너가 CNN을 인수한 것도 모두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다.

이같은 외국업체들에 견줘보면 한국의 실정은 한마디로 걸음마 단계이다.

지난해 우리 문화상품 수출이 음반 5천2백만달러, 영화 1억달러, 서적
4천만달러에 그쳤다.

현대 삼성 대우등 그룹들이 잇따라 영상 음반 방송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아직은 별다른 성과를 얻어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기업이 이러니 중소기업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국내업체들이 문화산업에서 성공하지 못하는데는 이유가 있다.

한정된 국내시장만을 보고 사업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제한된 시장에서 몫을 다투다보니 금방 사업이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짧은 기간안에 투자수익을 내려한 것도 이 분야에 뛰어든 기업들을 좌절
시킨 요인이다.

결국 투자금 회수기간을 길게 잡고 해외시장을 겨냥하는 것이 문화산업의
성공조건이 되는 셈이다.

세계는 급속하게 하나의 정보권으로 통합돼 가고 있다.

이런 시대에 문화산업, 특히 콘텐츠산업육성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키워내는가 하는 방법이 문제일 뿐이다.

미 노스웨스턴대의 스티븐 와일드만 교수는 "한국이 문화산업을 키우려면
우선 문화권이 유사한 아시아 지역을 목표로 수출을 추진한 다음 미국 유럽
시장으로 나아가는 전략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 강현철 기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