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은행 B부장.

그는 지난 3월초 종합기획부장으로 발령받았다.

그후 한달동안 자정전에 집에 들어간본 적이 없다.

업무파악도 시급했지만 당장 "경영정상화계획"을 만들어내야 했기 때문이다.

그가 자구계획서를 작성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직원및 점포축소와
부실여신 감축".

"당위성은 절실했지만 방법이 난감했다"는게 그의 토로다.

사실 금융빅뱅의 필요성은 더이상 말할 필요도 없다.

기업과 금융기관은 외환위기를 초래한 두 장본인이다.

둘다 몸집불리기만 있었지 "내실다지기"는 없었다.

"대마불사와 금융기관 불망"의 신화속에서 안주하다가 서서히 곪아가고
있는 것조차 깨닫지 못했다.

금융기관의 경우 부실채권이 대표적이다.

지난해말 현재 은행 증권 보험 종금 리스등이 6개월이상 이자를 받지
못하는 부실채권은 무려 42조8천억원(재정경제부 추계)에 달한다.

일반은행과 특수은행을 합친 33개 은행의 부실채권만 32조2천8백91억원.

종금사와 리스사도 각각 3조여원과 4조여원에 이른다.

나머지 4조여원은 보험사와 증권사 몫이다.

이들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은 96년말만해도 19조여원에 불과했다.

1년만에 갑절이상 증가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대기업의 잇따른 부도다.

그렇지만 모든 책임을 대기업 탓으로만 돌릴수 없다.

평균부채비율이 4백%를 넘는 기업들에게 돈을 퍼준건 다름아닌 금융기관
이었다.

점포및 직원확충도 마찬가지다.

금융기관들은 너도나도 외형경쟁에만 매달려 왔다.

"금융기관은 망하지 않는다"는 신화가 유효한 상황에서 외형확대는 곧
성장이었다.

그 결과 일반은행점포는 90년말 2천3백33개에서 97년말 5천5백12개로
불어났다.

일반은행 직원수도 같은 기간 8만2천여명에서 11만4천명 수준으로 늘어났다.

"종합금융그룹"이라는 신기루에 사로잡혀 돈도 되지 않는 자회사를
늘리는데 혈안이었다.

그 결과 나타난게 바로 "금융기관의 집단부실화"다.

따라서 금융부실을 치유하지 않고는 국제통화기금(IMF)체제를 극복할수
없는건 자명하다.

그러나 불행히도 금융기관들은 그 절박감을 깨닫지 못하는 듯하다.

은행들은 그저 "구색맞추기식 자구계획"에만 매달릴뿐 "설마 은행 문을
닫게 하랴"는 속내가 역력하다.

"사람 자르는게 어찌 쉽냐"는 한탄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투신사들은 "음모론"만 역설할뿐 스스로 살려는 노력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다.

보험사와 증권사도 마찬가지다.

아직은 구조조정의 가시권에 들지 않았다는데 자족하고 있다.

그렇지만 금융감독위원회의 태도는 단호하다.

"정권초기에 반복되는 요란한 "구호"로만 금융구조조정을 인식했다간 큰코
다친다"는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결국 금융빅뱅시대에 살아남느냐 여부는 전적으로 금융기관 스스로에 달려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자본력이 빈약한 은행들은 자기 죽는줄도 모르고 엄청난
빚더미에 파묻혀 있는 기업들에 막대한 돈을 대주고 있다"(비즈니스위크
4월6일자)는 외부의 우려만 들린다.

< 하영춘 기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