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말 현재 국내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이 67조7천9백억원을 넘는다는
금융감독위원회의 발표는 그 엄청난 규모때문에 우리를 놀라게 한다.

불과 한달전인 지난 2월말에 은행감독원이 밝힌 32조2천8백91억원의 거의
2배나 되는데 이렇게 큰 차이를 보인 까닭은 고정여신과 회수의문 및 추정
손실 등 외에 이자납부가 3개월이상 6개월미만 연체된 요주의 여신까지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국제기준에 어긋나는 대출채권 분류는 아무 의미가
없으며 일부 전문가들은 내년중에 부실채권이 1백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
하기도 한다.

이렇게 천문학적인 규모의 부실채권을 서둘러 정리하지 못할 경우
부실채권누적→신용경색심화→기업연쇄도산→부실채권누적 등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일본형 복합불황을 피할 수 없다.

IMF사태가 터진지 벌써 4개월이 지났지만 금융개혁과 기업 구조조정이
급하다는 원론적인 소리만 요란할뿐 도대체 진전이 없다.

그 이유는 기업과 금융기관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부실채권에 얽히고 설켜
서로 발목이 묶여있기 때문이다.

기업이 쓰러지면 그 빚이 바로 부실채권이 돼 가뜩이나 낮은 금융기관의
BIS비율을 끌어내리고 신뢰성을 추락시킨다.

그럴수록 금융기관은 몸을 사리며 대출을 꺼려 신용경색이 심화되고
기업은 쓰러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이같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자면 부실채권의 발생을 예방하고 기왕에
누적된 부실채권을 서둘러 정리해야 한다.

부실채권 정리의 핵심은 기업이 금융기관으로부터 빚을 얻어쓰면서 담보로
제공했던 엄청난 규모의 부동산을 빨리 처분하는 것이다.

현재 이 부동산을 살 구매력이 있는 곳은 외국인투자자들밖에 없다.

따라서 관계당국도 이미 적대적인 인수.합병(M&A)을 전면 허용하고
외국인도 단독으로 부동산을 매입 분양 임대할 수 있도록 부동산시장을
개방했지만 아직까지는 기대에 못미치고 있다.

성업공사가 몇조원의 부실채권을 매입했지만 담보부동산이 팔리지 않아
자금회전이 안돼 더이상의 부실채권 매입은 곤란한 상황이다.

정부는 추가대책으로 성업공사가 특별목적회사(SPV)를 설립해 해외증시에
상장한뒤 담보부동산을 증권화한 자산담보부채권(ABS)을 판매하거나 은행
대출을 출자전환한 뒤 보유지분을 매각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 방법은 대출채권 및 담보부동산의 유동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매우 좋은
방안임에 틀림없다.

이미 미국의 투자회사인 DLJ사가 한일은행에 이런 방식으로 부실채권을
매입할 의사타진을 했다고 하니 기대할만 하다.

다만 ABS발행에 걸림돌이 되는 소유권 이전등기 면제, 저당권 등 권리
이전에 따른 취득세와 등록세 경감 등을 위해 특별법을 서둘러 제정해야
하며 부동산취득에 따르는 위험부담을 경감시킬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을
추가해야 하겠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