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한식을 이틀 앞둔 지난 4일 오후.

기아그룹 창업자인 고 김철호 사장의 유택 앞에 선 박제혁 기아자동차
사장은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안경을 벗어든채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눈물만 연신 닦아낼 뿐이다.

눈물을 보인건 박사장만이 아니다.

한 계열사 사장은 서러움이 북받친다는듯 어깨까지 들먹였다.

이날은 20여명의 사장단이 한자리에 모여 선대사장의 유지를 되새기는
자리다.

그러나 올해 성묘가 여느해와 같은 의미일 수는 없다.

회사가 남의 손에 넘어갈 처지에 놓여있질 않은가.

그래선지 누구 하나 학산(김철호 사장의 호)선생의 묘비를 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고개를 숙인채 눈물만 흘렸을 뿐이다.

자전거로 시작해 국내 첫 종합자동차공장을 세워낸 학산선생의 업적을
한꺼번에 무너뜨렸다는 자책감에 가슴만 답답하다는 표정이었다.

"지난 81년 겨울인가요.

김선홍 회장과 모든 계열사사장들이 이 자리에 섰었지요.

그때가 생각납니다"

81년이면 경영악화와 중화학투자조정으로 기아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몰렸던 시기다.

사정은 지금과 마찬가지였다.

김선홍 당시 사장은 이 자리에서 "부디 힘을 달라"며 눈물로 호소했고 그
덕분인지 기아는 "봉고신화"를 일으키며 재계 10위권의 기업으로 급부상했다.

"반드시 기아는 재건됩니다.

학산선생이 이룩한 금자탑에 월계관은 못 씌울 망정 남에게 넘기는 일이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참배를 마치고 산을 내려오면서 사장들은 저마다 다시 한번 회생을 위한
각오를 다졌다.

<김정호 기자>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