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회사를 없애라"

"당장 없애는건 곤란하다. 좀 더 시간을 달라"

금융감독위원회와 은행들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줄다리기다.

금감위는 은행들이 살려면 자회사를 하루빨리 정리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은행들은 겉으로는 자회사정리에 수긍하는 모습이지만 가능하면 "하나라도
더 건지겠다"는 속내를 숨기지 않고 있다.

은행들이 "막강권부"인 금감위의 "자회사정리" 요구에 미온적인 이유는
복합적이다.

어렵게 갖춘 종합금융그룹의 모양새를 하루아침에 무너뜨리는건 곤란
하다는게 표면적 이유다.

은행들은 문민정부가 "세계화" 기치를 높이 들었을때 종합금융그룹을
표방하고 나섰다.

조흥은행이 지난 94년 "2000년대 장기경영계획"을 발표, 선수를 치고
나섰다.

2004년까지 자회사를 20여개로 늘린다는게 골자였다.

이후 은행들은 앞다투어 장기경영계획을 내놨다.

그 핵심은 자회사확충이었다.

그 결과 지난 91년말 69개이던 일반은행의 자회사는 지난 97년4월말
1백4개로 불어났다.

96년에만 14개가 증가했다.

은행들은 퇴직 임직원의 배출창구로도 자회사를 필요로 했다.

자회사 하나를 만들면 상무이상 임원자리만 5개이상이 생긴다.

필요하면 부회장과 회장직을 만들어도 된다.

이런 까닭에 대부분 은행자회사들은 직원수에 비해 임원수가 지나치게
많은 가분수형태를 취하고 있다.

상업은행의 상은파이낸스의 경우 직원 17명중 3명이 임원이다.

국민은행의 국민리스도 사장 1명밑에 부사장만 5명이다.

대구은행의 대구리스는 아예 수석부사장이라는 희한한 자리를 두고 있다.

자회사 임원중 69%가 은행출신이다.

그렇지만 이런 실험은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일반은행들은 국내자회사에만 2조1천67억원(97년4월말 현재)을 출자하고
있다.

자기자본(20조1천6백79억원)의 10.5%다.

그렇지만 96회계년도에 자회사로부터 받은 배당은 출자액의 2.0%에 불과
했다.

정기예금이자도 건지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은행자회사중 지난 회계연도에 배당을 실시한 회사는 38개에 불과
했다.

이제 은행 자회사 정리는 불가피한 과제다.

자회사 확충으로 재미를 본 은행은 없다.

금융권간 업무장벽도 무너지는 추세다.

더욱이 지금은 은행이 사느냐 죽느냐 하는 시점이다.

그런데도 은행들은 자회사 정리에 마냥 미온적이다.

은행들에게 금융빅뱅은 아직 먼나라 얘기인가 보다.

< 하영춘 기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