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외환위기 끝에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우리 귀에
익숙해진 말 가운데 하나가 투명성이다.

기업경영의 투명성, 경제운용의 투명성, 제도의 투명성 등은 흔히 현재의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중요한 전제조건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다소 주관적이고 추상적인 투명성이라는 용어가 과학적 분석방법을
자랑하는 경제학 논의에 등장하는 것은 얼핏 이해되지 않는 면도 있다.

그러나 최근 국가간의 거래가 확대되고 다양해지면서 국제거래의 기준이
되는 룰도 변화되어, 앞서 언급한 신뢰성이나 투명성 같은 이른바 정성적
분석내용 역시 그 중요성을 인정받게 되었다.

투명성은 한마디로 속이 훤하게 들여다 보이는 것을 의미한다.

기업의 경영이 투명하지 못해 그 속을 알 수 없다면, 겉으로 아무리
분바르고 치장을 해도 그 기업을 인수하는데 관심을 기울일 사람은 없다.

외국의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적대적 M&A가지 허용하는 마당에 기업경영의
투명성은 외자를 유치하는데 있어서 보다 근원적인 문제인 것이다.

정부의 경제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정책의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는 한, 앞으로의 경제상황에 대한 예측이
어려워지고 이에 근거한 합리적 경제활동을 기대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경기의 변동폭이 더욱 커지고, 어느 누구도 이런 나라와
국제거래를 하려고 들지 않을 것이다.

투명성이라는 말이 국제거래에 있어서 중요성을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우루과이 라운드의 협상과정에서였다.

85년 9월 남미 우루과이의 푼타 델 에스테에서 시작된 우루과이 라운드는
긴 협상 끝에 마침내 95년 1월 세계무역기구(WTO)를 출범시켰다.

GATT(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체제를 대체하게 된 WTO는 미국의
주장과 이해에 맞게 농업부문 및 서비스 부문의 자유무역을 중요한 내용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서비스의 교역은 상품의 교역과 달리 경제활동 자체를 대상으로
한 것으로 차별 등 보이지 않는 제약이 많이 따르게 마련이다.

이에 WTO는 서비스 무역에서 일반적으로 지켜야 할 원칙을 규정하고 있는데
투명성의 확보가 그 중 하나의 내용으로 포함되어 있다.

여기서 투명성 확보는 제도의 투명성을 의미한다.

이는 규제 등의 방법을 외국인의 입장에서 보아도 분명하게 해 두는 것이다.

예컨대 외국인이 알기 어려운 "행정지도"와 같은 형태의 규제를 가한다면
이는 불공정한 것이라는 말이다.

규제를 하더라도 가능한 한 공개적이고 명시적인 형태로 해야 한다.

세계무역에서 서비스무역의 비중은 해마다 커지고 있다.

특히 금융, 보험과 통신 서비스는 그 영향력이나 시장의 규모와 관련해
볼때 단순히 양적인 비중 만으로 잴 수 없는 중요한 부문들이다.

최근의 주식시장이 상징하는 바와 같이 우리의 자본시장은 외국인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기업, 제도, 정책의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외국자본은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고 외환위기는 언제든 다시 찾아올 수 있다.

국제경제계의 거물급 인사들이 우리의 환난에 대해 충고하면서 투명성
확보를 빠뜨리지 않는 사실을 새겨둬야 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