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협 전 고려대 총장은 지난 82년 6월 국무총리로 임명됐다.

이때 취임사에서 행정전반에 막힌 통로를 뚫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중소기업분야에서도 돈흐름과 기업지원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뚫기
위해 "굴착작업"을 시도했다.

먼저 중소기업정책심의회를 열었다.

이 심의회는 중소기업정책을 검토하는 대통령직속기구.

대통령직속기구였음에도 총리와 관계장관들이 다 참석해 회의를 연 건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이후 심의회는 1년에 1번 형식적으로 열렸다.

지난 95년부터는 위원장의 지위도 총리에서 산업자원부장관으로 낮춰졌다.

위원들도 장관급에서 차관급으로 끌어내려졌다.

그나마 차관들조차 바쁘다는 핑게로 담당국장을 내보내거나 아예
참석하지 않았다.

겨우 명목을 유지해오던 이 심의회가 새정부의 조직개편으로 폐지되고
말았다.

대통령직속기구로 31년간 엄연히 존속해왔으나 아무런 성과도 올리지
못한 채 지난달 간판을 내리고 말았다.

중소기업지원을 위한 이런 심의기구는 창업심의회 계열화촉진협의회
중소기업정책위원회 하도급분쟁협의회등 30여가지가 아직도 남아있다.

이렇게 많은 기구가 왜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할까.

이는 결코 법적인 뒷받침이 모자라서가 아니다.

인적구성이 잘못돼서다.

인적구성이 좋은경우 법적기구가 아니어도 현안을 잘 처리해내 예가
많다.

지난 94년 중소기업관계법을 개정할 때 기협중앙회가 설치한 관계법개정협
의회는 임시기구였음에도 기업간 협력법및 구매촉진법등을 매우 효율적으로
개정해냈다.

당시 여의도 중소기업회관 10층회의실에서 정부측과 업계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협의회는 구매촉진법 존속여부를 두고 아침 8시부터
5시간동안 끈질긴 토론을 벌려 구매촉진법을 중소기업진흥법과 통합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이 회의가 성공적으로 이뤄진데는 두가지 요인이 있었다.

첫째 업계관계자들이 많이 참여를 했다.

이들은 현장에서 경험한 내용을 자료화해 건의했다.

그래서 현실적인 해답이 나왔다.

둘째는 위원장의 회의진행이 효과적이었다.

업계와 정부의 의견이 서로 엇갈렸지만 이를 발전적으로 절충하는
리더쉽이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그때 회의를 진행한 위원장은 기협중앙회회장이던 박상규국민회의
부총재였다.

그는 공무원생활을 해본데다 오랫동안 금속업체를 경영해온 중소기업인
이어서 양측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냈다.

그래선지 새정부가 신설한 대통령직속의 중소기업특별위원회 위원장에
박부총재가 내정됐다.

특별위원회는 자체적으로 중소기업정책을 입안할 수 있다는 점이 폐지된
정책심의회와는 다르다.

조정기구가 상설 입안기구로 바뀐 셈이다.

이 기구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는 역시 어떤 사람들을 위원으로
구성하느냐다.

폐지된 정책심의회의의 경우 19명의 위원중 정부측 대표가 13명인데
비해 업계대표는 임정환 명화금속사장 한사람 뿐이었다.

이번 특별위원회도 이렇게 업계를 배제한 조직을 만든다면 막힌 통로를
뚫기는 어려울 것이다.

고금리시대에도 여전히 꺾기가 성행하고 신용보증을 받았는데도
이면담보를 요구하는등 돈흐름을 막는 사례가 많다는 걸 알지 못할
것이다.

정부와 업계사이에 통로가 시원히 뚫릴 수 있게 업계에서 위원이 많이
임명되길 기대한다.

< 이치구 기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