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신청했을 무렵인 지난해 11월말.

하나은행은 프라임레이트(대출우대금리)를 연 9.75%에서 연 11.75%로
2%포인트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프라임레이트를 0.25%포인트 정도만 인상해도 비난여론이 빗발치던 당시
상황에선 파격적인 일이었다.

은행의 논리는 간단했다.

"시장금리가 급등하고 있어 수지보전 차원에서 어쩔 수 없다"는것.

그러나 하나은행은 웬일인지 오후들어 부랴부랴 당초 금리인상을 취소했다.

0.2%포인트만 인상하겠다고 번복했다.

"은행이미지가 안좋아진다"는게 이유였다.

하나은행은 결국 대부분 시중은행들이 금리를 올린 지난 12월중순께서야
2%포인트 인상을 단행했다.

은행들은 요즘 선진적인 금리결정 시스템을 갖추려고 애쓰고 있다.

최근 몇년사이에 저마다 ALM(자산부채종합관리)위원회를 설치했다.

또 시장리스크까지 반영하는 VAR모형 개발에도 나서고 있다.

그러나 현실로 나타나는건 영 딴판이다.

국내 은행들의 금리결정 방식은 사례처럼 "원시적"이다.

눈치보기만 있다.

다른 은행이 금리를 인상하면 뒤좇아 올리는게 우리 은행들의 생리다.

인상폭도 차이가 나지 않는다.

리스크관리는 안중에도 없다.

은행들이 이같이 된데는 정부도 큰 몫을 했다.

국민은행은 올해초 프라임레이트를 연 11.5%에서 연 10.5%로 낮출 계획을
세웠다.

이는 은행장이 임원회의에서 지시한 사항이기도 했다.

고금리로 가계 기업의 아우성이 극에 달했기 때문.

은행측은 한국은행과 협의에 들어갔다.

그러나 한은의 답은 의외로 나왔다.

"자칫 중앙은행의 재할인율 인하로 비춰질 수 있으므로 금리를 내리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여론에 치이고 정부에 간섭받는 꼴이다.

어쩌면 우리 은행들이 처한 한계이기도 하다.

금리에 관한 한 자율성이 없는게 은행들의 현주소다.

문제가 여기서 그친다면 은행들은 면죄부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국내은행들의 금리관리및 자금운용 능력은 한마디로 형편없다.

속을 들여다보면 위험천만하기 일쑤다.

그나마 우량은행이라고 일컬어지는 A은행의 자금운용 상황을 살펴보자.

올들어 2월까지 평균 조달만기는 4.8개월.

평균 운용만기는 7.5개월.

조달과 운용 사이에 기간 불일치(미스매칭)현상이 심각하다.

정기예금의 경우 작년 같은기간 동안 18.6개월의 평균만기로 조달했으나
올핸 6.7개월로 짧아졌다.

달리 말하면 단기고금리 상품으로 고객을 대거 흡수했다는 얘기다.

우선 예금만 확보하자는 전략을 폈던 셈이다.

굳이 금융의 원론을 들추어 낼 것도 없다.

금리는 리스크와 시장금리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

조달과 운용은 매칭돼야 이상적이다.

이런 원론을 기준으로 잡는다면 금리를 컨트롤 할줄 아는 은행은 아직
찾기 어렵다.

< 이성태 기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