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부도위기라는 발등의 불을 끄기에 정신이 팔려 관심권 밖으로 밀려난
듯한 인상이지만 올해 노사현장의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

노동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 1.4분기 중 노동쟁의조정 신청건수는 1백22건
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배 가까이 늘었고 분규참가자는 무려 10배나
증가했다.

경제불황이 깊어지면서 임금체불 정리해고 등과 관련된 노사분규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규모로 보면 아직 크게 우려할만한 상황은 아니라 하더라도
증가추세로 보아 결코 방심할 일이 아니다.

특히 4월은 사업장별 임단협상이 시작되는 달인 데다 대기업들의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따른 대량실직사태가 4,5월 중에 집중될 것으로 보여 머지않아
산업현장이 시끄러워질 공산이 크다.

더욱 걱정인 것은 복수노조 허용 이후 상급 노동단체들이 다투어 선명성
경쟁에 나서 언제 뇌관에 불이 당겨질지 모를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노총은 정부가 공공부문에 대해 일방적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한다면
오는 5월중 단식투쟁과 함께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했는가 하면 민주
노총과 한국노총은 "실업자연맹" 형태의 노조조직을 추진하겠다고 밝혀
사회적 긴장감을 조성하고 있다.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이 지금과 같은 공공부문의 방만한 구조와 비효율성
을 그대로 두고서는 경제개혁이 성공할 수 없다는 데는 이미 국민적
컨센서스가 형성돼 있다.

그런데도 정원감축이나 조직축소 임금삭감 등 어느 것 하나에도 손을 대선
안된다는 주장은 한마디로 억지가 아닐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실업자를 조직화하려는 움직임도 무책임한 발상이다.

지난해 말부터 프랑스 독일 등 일부 유럽선진국의 급진파들 사이에서 일고
있는 "실업자운동"은 노동시장 유연화 개혁에 대한 강력한 적대감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지금 우리의 상황에는 맞지 않을 뿐더러 실업자를 노조원으로
받아들일 수 없도록 규정한 현행법에도 어긋난다.

이같은 사실을 모를리 없는 노동단체들이 선진국에서 조차 경계의 대상이
되고 있는 실업자운동을 서둘러 도입하려는 것은 IMF사태 이후 약화된 노동
단체의 영향력을 실업자의 조직화로 만회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노동단체들의 이기적 전략 때문에 산업현장이 불안해진다면 온
국민의 경제회생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돌아갈 것이 뻔하다.

산업현장이 불안하면 외국투자가 들어올리 없다.

지난 7일 대한중석에서 인수협의차 회사를 방문한 이스라엘 투자자들에게
노조가 과격행동을 해 계약성사 여부가 불투명해졌다는 보도는 충격적이다.

이럴때일수록 노사가 대국적인 안목에서 서로 도와 함께 사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노동계의 자제도 중요하지만 분규예방 차원에서 기업의 해고회피 노력과
그에 대한 정부의 지원도 필수적이다.

이 고빗길에서 대규모 노사분규까지 겹친다면 어떻게 될 것인지, 노.사.정
모두 진지하게 생각해볼 일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