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록 <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

화의제도 폐지가 정치권에서 제기되었다.

망해야 할 기업이 화의제도를 악용함으로써 구조조정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에 시장경제원리에 의해 이들을 신속히 정리하자는 것이다.

화의제도는 원래 기업(채무자)이 파산위기에 처했을때 법원이 관여하여
채권채무자간의 집단적 합의를 도출, 회사를 갱생시키는 절차이다.

원래 채권채무자 사이에 신뢰관계가 형성되어 있고 채권채무관계가 비교적
단순할때 활용하는 제도이다.

하나 본래취지와 달리 채권채무관계가 복잡하고 이 제도를 활용하기에
부적합한 주식회사들이 경영권 유지를 위해 활용하는 문제점이 지적되곤했다.

개정화의법에서는 화의신청의 기각요건 강화, 절차단축, 채권자의 권한과
역할 강화를 통해 화의제도가 왜곡운용되는 것을 시정하였다.

원래 화의법은 회사정리법, 파산법과 함께 기업정리와 갱생을 관할하는
법이다.

회사의 존속가치가 청산가치보다 큰 경우 경영권을 배제한채 법원이 관여
하여 회사를 살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범이 회사정리법이라면 화의법은
자산규모가 작은 기업이 도산위기에 처했을 경우 경영권을 유지하는 상태
에서 회사갱생을 도모하는 것이다.

회사의 가치는 회사가 가진 토지와 건물, 기계, 원자재 등 유형자산뿐만
아니라 경영능력, 직원의 팀워크, 거래처와의 네트워크등 무형자산을 포함
한다.

만약 일시적 어려움으로 이 회사가 부도위험에 처했을때 기업이 가진 모든
유형자산을 처분하여 채권자가 나누어 갖는다면 채권자 뿐만아니라 사회적
으로 이로운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이때 일시적으로 국가가 관여하여 회사의 유무형가치를 존속시키는 것이
채권자와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기때문에 회사정리, 화의제도가 필요하게
된다.

최근 IMF체제하에서 고금리와 자금난으로 많은 기업이 부도위험에 처해
있다.

그래서 법정관리나 화의를 신청하는 기업이 갑자기 증가하게 되었다.

법정관리와 화의신청건수를 보면 회사정리를 신청한 업체는 연간 1백여개.

이중 35%정도만 법정관리를 받을 수 있었다.

법정관리가 개시된 것 가운데에는 겨우 12%정도만이 종결 또는 폐지되어
최근 연간 1만여 기업이 부도가 나고 있는 상태에서 사실상 법정관리제도를
통해 살아난 기업은 그리 많지 않다.

화의제도의 경우에도 95년 처음 7건이 접수된 후 이용률이 미미하다가
작년에는 180여건이 접수되었다.

기업구조조정과정에서 법정관리, 화의신청이 늘어나자 최근 회사정리법,
화의법, 파산법이 개정되었다.

개정회사정리법의 요지는 지방법원의 회사정리사건처리에 있어서 담당판사
부족, 업무가중, 전문성부재라는 점을 감안하여 변화사.공인회계사.은행가로
구성되는 관리위원회를 설치하여 법관에 대한 전문적 자문과 업무보조를
하게 했다.

또한 회사정리절차의 장기화로 인한 채권자의 불이익을 최소화하며, 정리
회사의 불안정상태를 조기에 종결할 수 있도록 절차의 신속성을 보완하고,
채권자 보호와 지위강화를 위해 채권자협의회를 구성하였다.

화의법에서는 화의를 신청할 수 있는 자격오견을 강화하여 화의제도가
경영권방어를 위한 피난처가 되는 것을 억제하고자 하였다.

특히 사주의 독단적 경영을 막기우해 보전관재인을 두어 경영에 관여하게
하고, 채권자보호를 위해 채권자협의회를 구성하여 화의절차에 참여하게
하였다.

개정회사정리법에서 법정관리를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은 회사의 존속가치가
청산가치보다 커야 한다는 경제성의 원칙이다.

개별기업 존속의 경제성 뿐만 아니라 많은 기업이 회사정리 또는 화의제도
를 통해 갱생의 길로 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경제성의 원칙 또한 당연히 강조
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도 본다면 개정회사정리와 화의제도는 IMF체제라는 비정상적
경제상태에서 법원의 엽무경감, 채권자보호 강화라는 점에 치중되어 있다.

화의법 폐지논의 역시 비정상적 경제상태에서 존속가치가 큰 수많은 기업의
갱생가능성을 방치하는 것이다.

폭주하는 업무는 외면하고 부도위험에 처한 기업자산에 대한 금융권의
채권확보나 확실히하자는 행정편의주의적 발생에 불과하다.

경영권 유지를 시도하는 기업가에 대한 감정표현은 아닐까?

기업갱생제도를 보다 바람직하게 운영하기 위해서는 회사정리, 화의,
파산법 등을 한데묶어 통합법을 제정하는 것이다.

미국은 70년대말 통합법을 제정하였다.

독일, 일본, 미국 등도 통합법을 논의중이다.

또한 보다 많은 기업에 갱생의 길을 주기 위해 기업퇴출관련 사건을 전담할
파산법원을 설립하여야 한다.

지방법원 합의부에서 5~6명의 판사가 수만명의 근로자와 수조원의 채권이
관련된 회사의 갱생을 도모하기에는 업무량이 많고 전문성도 있을 수 없다.

IMF체제와 같은 경제상황하에서 위험에 처한 기업은 그 존속가치가 인정될
때 법과 제도의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다.

이런 기업의 권리를 무시하는 화의법폐지논의는 정책당국의 직무유기에
불과하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1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