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하나같이 증자를 추진하고 있는 것은 따지고보면 당연하다.

쉽게 말해서 살아남기 위해서다.

16개 시중은행중 12개 은행이 은행감독원으로부터 경영개선명령을 받아
증자가 안되면 강제통폐합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정부가 출자한 제일.서울은행을 제외한 14개 시중은행의 올해중 증자계획
규모는 3조원에 이른다.

부작용없이 될 수만 있다면 은행증자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금융기관 대형화는 꼭 달성해야할 과제고, 대외신인도유지를 위해 긴요한
국제결제은행(BIS)기준 자기자본비율 8%달성도 증자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시중은행 증자러시는 걱정스러운 측면이 결코 적지않다.

주가가 액면가를 밑도는 상황에서 증자는 무리를 수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목표가 좋더라도 그 과정에 문제가 있으면 목표를 달성하더라도
차라리 아니함만 못한 경우가 적지않은데 은행증자도 경우에 따라서는 그럴
공산조차 없지 않다.

2천원도 밑도는 주식을 5천원에 매입하도록 기존주주들을 "설득"해야할
것은 불을 보듯 명확한데, 문제가 없을 수 없다.

은행주식을 갖고 있는 기업인 등은 거래관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증자에
참여할 수밖에 없을 것이나, 증자참여 그 자체가 비논리고 기업부담일 것은
자명하다.

종금사들의 살아남기위한 증자움직임만으로도 말이 없지 않은 상황인데
여기에 은행까지 가세한다면 부작용은 엄청날 것이다.

주가가 액면가를 밑도는 상황에서 이루어진 "비상식적인 은행증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경제상황이 어느 때보다 어려운데다 증자
규모는 엄청나기 때문에 더욱 걱정스럽기만 하다.

외자참여를 유도하는 것도 문제는 마찬가지다.

실권주를 인수시키거나 주총결의를 거쳐 사모방식으로 증자물량을 외국
투자자에게 인수시키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는 모양이나, 주가를 감안할 때
부대조건이 없을 수 없다.

어떤 형식으로든 "상당한 경영권행사"를 보장해주는 등의 조건이 붙을
것은 당연하다.

외국인투자에 거부반응을 갖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이미 갈 길이 사실상
예고되고 있는 서울.제일은행은 또 그렇다치더라도 거의 모든 국내은행에서
외국인들이 지배주주가 된다면 이 또한 문제가 없다고 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서울.제일은행처럼 정부에서 출자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
하리라고 본다.

우선 국제통화기금(IMF)이 동의할리 없을 것이다.

이런 현실을 감안할 때 감독당국의 은행구조조정계획 자체가 조정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증자를 못하면 통폐합한다는 식으로 무리가 뻔한 증자경쟁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지금 상태로 옥석을 가려 합병할 은행을 정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
된다.

은행경영상태를 실사, 부실요인은 감자 등으로 털어내고 통폐합한 뒤에
증자를 실시토록 한다면 은행대영화도 가능하고 증자과정의 비리도 없앨 수
있을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