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의 국내기업 사냥이 시작됐다.

이미 대상그룹은 알짜배기인 라이신사업부문을 독일 바스프사에 매각했다.

삼성중공업 중장비사업도 스웨덴의 볼보로 주인이 바뀌게 됐다.

쌍용제지는 미국의 다국적기업인 프록터앤드갬블(P&G)로 넘어갔다.

식음료 제약 종묘 등 내수업종이라고 외국인 M&A의 사각지대가 아니다.

미국 코카콜라는 두산음료 등 국내 보틀링업체의 영업권을 인수해 본격적인
국내직판체제에 들어갔다.

국내 최대 종묘업체인 서울종묘 흥농종묘가 줄지어 다국적기업에 팔렸다.

제약회사인 한국화이자 대웅릴리도 외국합작사의 손에 넘어갔다.

이뿐만 아니다.

금융기관들도 외국인들이 노리는 업종중 하나다.

미국의 세계적인 투자은행인 골드만 삭스는 제일은행이나 서울은행 인수를
공식화했다.

시티은행도 마찬가지다.

금융계에도 거센 M&A바람이 예고되고 있는 것이다.

M&A시장은 우선 매물로 넘쳐나고 있다.

IMF시대에 들어서면서 국내기업들이 구조조정에 다급해졌기 때문이다.

알짜배기 기업도 유감없이 "메뉴판"에 올려놓았다.

"국내 10대그룹들이 팔려고 내놓은 기업만도 부지기수"(권성문 한국M&A
사장)다.

일부는 이미 협상테이블에까지 올라있는 상태다.

외국인에겐 매물도 매물이거니와 우선 헐값으로 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때마침 환율폭등과 주가폭락으로 기업가치가 절반이상으로 뚝 떨어졌기
때문이다.

중국 등 거대한 아시아시장 개척을 위한 전진기지로 삼을 수 있는 지리적
이점도 외국인들을 자극한다.

그래서 외국의 기업사냥꾼들이 서울로, 서울로 날아들고 있다.

바야흐로 한국은 외국인들의 M&A각축장이 된 것이다.

게다가 외자유치를 통한 IMF극복이 최대의 과제인 정부가 서둘러 각종
제도정비에 나서고 있어 외국인 M&A는 더욱 고조될 전망이다.

최근 런던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의 합의에 따라 조만간 선진각국의
"투자촉진단"이 방한할 예정이어서 외국인 M&A는 더욱 가속화되게 됐다.

그러나 "아직은 외국인 M&A가 시작단계에 불과하다"(한찬희 세동회계법인
전무)는게 중론이다.

상당수 기업들이 외국인에게 이미 인수됐지만 여전히 외국인들에겐
매력적인 매물이 많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제도상의 걸림돌이 완전히 제거되면 큼직큼직한 M&A건이 성사되는건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외국인 M&A"라는 바람이 거세지면서 업계 관계자들은 국가 전체적인
경쟁력이 잠식되는등 적잖은 후유증도 우려된다고 지적한다.

생사의 갈림길에 선 기업들이 울며겨자먹기식으로라도 유망기업이나
핵심사업을 내놓지 않고는 팔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다 망가진 부실기업을 살 턱이 없다는 이야기다.

반면 유사이래 최대의 위기상황에서 찬밥 더운밥을 가릴 처지도 아니거니와
오히려 한단계 도약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많다.

"자연스럽게 세계적 기업들과 경쟁이 촉발돼 국내기업의 생산성 기술
경영기법 등 다방면에 걸쳐 효율성이 크게 향상될 것"(유승민 KDI 연구위원)
이라는 것이다.

아무튼 "외국인 M&A"파고가 거세게 밀려오는 만큼 이에대한 철저한 대비와
함께 이를 최대한 활용해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는데는 이견이 없다.

< 박영태 기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1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