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경제가 혼수상태다.

한국 인도네시아 태국 경제가 줄줄이 응급실로 실려갔다.

주치의는 IMF.

서방언론들은 환부를 모두 도려내는 대수술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 속내에는 아시아를 바라보는 차가운 시각이 깔려 있다.

뇌물, 부패, 애매한 제도 등 아시아의 후진적 관행이 병을 일으켰다고
지적한다.

아시아의 대표적 정치 지도자인 이광요 전 싱가포르 총리가 여기에 반론을
제기했다.

이 전총리는 ''아시아지역 붕괴의 근본원인''이라는 제목의 기고를 통해
"아시아지역의 위기는 아시아의 문화적 문제가 아니라 취약한 금융시스템
에서 비롯됐다"고 강조했다.

이를 치유하는데는 아시아국가들뿐 아니라 전세계가 함께 노력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다.

< 정리 = 장규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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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의 언론들은 아시아에서 발생한 금융위기를 그 나라들이 자초한
것이라고 몰아붙이고 있다.

정계나 관계에 연줄이 없거나 뇌물을 주지 않으면 될일도 안되는 관행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물론 친인척이라는 이유로 특정인을 우대하고, 또 학연이나 지연을 따지며,
뇌물을 챙기는 것은 옳지 않다.

이런 문제들이 사태를 악화시켰다.

경제전반에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이같은 관행이 금융위기를 일으킨 근본 원인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지난 20여년간 아시아 지역 국가들은 매년 8~10%의 경제성장을 달성했다.

이 "경제기적"의 시기에도 이런 관행은 존재했었다.

서양사람들이 동양의 족벌체제를 보고 하는 비판은 동양인들보다 훨씬
냉혹하다.

그러나 이는 동양 특유의 유교적 문화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나오는 것이다.

가족을 돕고 친구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은 유교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물론 종종 이런 정서가 잘못 변질돼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사실이다.

공직에 있는 사람이 자리를 이용해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혜택을 주는 일이
더러 있다.

몇몇 국가의 정치인이나 관리들은 아예 개인적인 용도로 권력을 사용하는
것을 당연시하기도 한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주어진 권한을 쓰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는 자세를
찾기가 어렵다는 지적도 틀리지 않다.

정부가 깨끗하고 공정하지 못하다는 평을 듣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만일 아시아 각국이 영국의 식민지였던 싱가포르나 홍콩처럼 권력의
남용이나 특권행사를 감시하는 장치를 잘만 마련한다면 유교적 가치는
변질되지 않고 보존될 수 있을 것이다.

싱가포르는 권위적이라는 인상을 풍기지만 부패 등이 발붙일 틈이 없는
감시망을 갖추고 있다.

싱가포르의 관리는 시장에서 벌어지는 각종 게임이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조정하는 심판으로서의 역할에만 충실하게 돼있다.

무엇보다 이번 위기의 근본 원인은 아시아 금융시스템의 수준이 낮았다는
데서 찾아야 한다.

빠른 속도로 들어왔다 나가는 뭉칫돈의 위력에 대해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다.

동아시아는 90년대 들어 연간 7~9%씩 성장했다.

반면 선진국들은 고작 2~3%정도 성장하는데 그쳤다.

경제학자들이나 금융전문가는 물론 IMF나 세계은행같은 기구에서도
아시아의 경제기적을 칭송하는 목소리 일색이었다.

높은 수익을 찾는 달러가 동아시아로 몰려들었다.

그동안 동아시아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은 드러나지 않았다.

각국의 은행이나 외국은행 가릴 것 없이 돈을 달라는 대로 빌려 줬다.

미국과 유럽 일본 은행들은 자국내에서보다 더 많은 이익을 내겠다고
열을 올렸다.

그들은 환율안정이 영원히 지속될 것으로 믿었다.

게다가 빌려오는 돈은 대부분 단기부채였다.

단기외채는 장기적인 사업에 투자됐다.

과잉투자는 곧바로 거품으로 이어졌다.

달러화가 95년 하반기 이후 강세로 돌아서면서 아시아지역 국가들의 수출은
급속히 줄어들었다.

경상수지 적자폭은 더 커지고 버블은 곧바로 경제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도자들은 경제시스템이 스스로 이같은 문제를 치유할 수 있다는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었다.

심지어는 민간기업들이 해외에 많은 빚을 안고 있고 엄청난 손해를 보고
있는데도 금융시스템의 구조적 취약성을 알지 못했다.

태국의 경우 경상수지 적자가 GDP의 8%에 달하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태국 바트화가 가장 취약했다.

지난 96년 중반부터 공격받기 시작해 지난해 2월 나락으로 추락했다.

다른나라 통화들이 타깃이 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지도자들은 국제 금융시장에서 돌아다니는 뭉칫돈의 위력을 잘 알지 못했다.

한마디로 무지했다.

잘못 판단한 정책이 나올때마다 각국에 나가 있던 외국은행의 전문가들이
이를 떠들어댔다.

이는 곧바로 전세계에 알려졌고 통화와 주식의 투매로 이어졌다.

이같은 관점에서 볼때 아시아의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은 IMF 프로그램을
철저히 이행하는 것 외엔 별로 없다.

지금 당장은 무척 고통스럽더라도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를 위해선 정치 지도자들이 국제금융시장에 확신을 줘야 한다.

경제, 특히 금융시스템을 개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줘야 한다.

중앙은행을 좀더 효율적으로 개편하고 왜곡된 금융시스템을 바르게 수정
하는 노력도 따라야 한다.

국제사회도 이들을 도와줘야할 의무가 있다.

국제기구나 신용평가기관 등도 아시아국가들이 벼랑끝에 몰릴때까지
수수방관했다.

세계은행 총재인 제임스 울펜손도 인도네시아 사태가 발생한 뒤 자신들이
너무 낙관적이었다고 인정했다.

피치 IBCA 같은 신용평가기관도 동아시아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했었다고
후회했다.

외국은행들은 돈을 빌려줄때 사업적인 측면에서 타당성을 따지기보다는
채권자가 정치권에 어느정도 영향력을 발휘하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겨왔다.

아시아에선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한 사업방식이라고 받아들였던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아시아의 금융위기는 아시아 혼자의 힘으로 결코 해결할 수 없다.

아시아지역의 성장을 견인해야할 일본은 경기부양은 커녕 오히려 최악의
침체에 빠져 있다.

일본은 추가적인 감세나 정부지출 확대를 통해 경기를 활성화시킬 의지도
없고, 능력도 없다.

또 경제가 다시 제대로 굴러가도록 은행들의 부실채권을 해결할 생각도
없어 보인다.

결국 G7(선진 7개국)이 문제를 함께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G7은 동아시아지역 국가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피폐된 경제를 회복시키고
자신감을 갖도록 해야 한다.

경제는 상호의존적이다.

서로 협력하는 과정에서 더 큰 것이 창조된다.

아시아 국가들이 고통스런 개혁을 감수할 의지가 있다면 몇년안에 다시
제위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유럽과 미국은 현재의 혼란을 진정시키고 투자자들이 다시 아시아를 찾을
수 있도록 아시아 국가들과 함께 노력해야 한다.

자본이 아시아 지역으로 다시 들어올때 아시아의 경제는 살아날 것이며,
그 결과 모든 국가가 혜택을 보게 될 것이다.

[ LA타임스 신디케이트 독점전재 ]

*** ''아시아적 가치''란 무엇인가 ***

"아시아 전역에 파급되고 있는 경제위기는 이른바 "아시아적 가치"의
허구성을 보여준다"

일부 구미학자들은 호기를 맞은듯 이렇게 몰아붙이고 있다.

그들은 80년대말까지 4마리의 용(한국 싱가포르 대만 홍콩)과 아세안국가들
이 실현한 역동적인 경제발전의 동인을 개발독재로 설명하고 있다.

"유교적 문화"라는 이름아래 지속된 불합리한 관행이 결국엔 경제를 망치게
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같은 지적에 대해 대부분의 아시아국가 인사들은 수긍하지 않는다.

아시아인들이 중시하는 근면과 높은 교육열이 경제발전을 가져 왔다는
시각이다.

부패와 불합리가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을 외환위기의
원인으로 볼 수는 없다는 논리다.

과연 어느쪽 논리가 타당한가.

굳이 따지자면 양쪽 모두 옳지 않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아시안 월스트리트의 베리 웨인 기자가 인용하고 있는 히치콕의 논문은
이같은 논의에 몇가지 시사를 준다.

개인보다 공동체를 강조하고 개개인의 자유보다 조직의 조화와 사회안정을
앞세우는 경향이 꼭 아시아인들만의 특징적인 경향은 아니라는 점이다.

아시아인들이 자기가 살고 있는 사회의 모습에 대해 고민하는 만큼 미국인들
도 고민하더라는 것이다.

양쪽 사람들은 모두 물질문명에 의해 삶의 가치가 퇴색당하고 있는 가정과
정신세계가 경시되는 풍조를 걱정하고 있었다.

결국 아시아적 가치는 오로지 아시아인들만의 가치는 아니라는게 그의
결론이다.

모든 사람들의 보편적인 가치라는 얘기다.

웨인 기자는 아시아적 가치에 관한 논쟁에서는 서로간에 오만과 편견을
벗어던지는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아시아적 가치가 아시아의 발전에 도움이 됐는지, 아니면 오히려 망치는
이유가 됐는지를 따지기에 앞서 이중적 잣대를 불식시키는게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 박재림 기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1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