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풍경 무심히 담아"..신작 '강원도의 힘' 홍상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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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감독은 그의 영화와 많이 닮았다.
느린 말투, 조금 수줍어하는 듯한 시선이 그의 카메라앵글과 비슷하다.
신작 "강원도의 힘"에서 그는 일상의 풍경을 무심히 담아내는 영화미학을
선보였다.
허겁지겁 보여주고 싶은 게 많았던 충무로영화와 비교해보면 생경한
느낌마저 준다.
작품에 대한 논란과 함께 그는 어느덧 작가주의 감독으로 자리잡았다.
강원도의 힘은 올해 칸영화제에서 "주목할만한 시선"으로 선정됐다.
왕가위감독의 "중경삼림"이 선정됐던 그 부문이다.
축하를 하자 그는 "돈없이 영화를 하려면 칸 같은데서 주목받는게
필요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언젠가 여자친구가 강원도에 다녀온 이야기를 해줬다.
그걸 수첩에 적어놨고 영화로 만들게 됐다.
그렇지만 강원도라는 공간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여행을 떠나고 거기서 겪는 개인적인 경험이 문제다" 주제가 뭐냐는 질문에
그는 "이성적인 관념이나 분석 대신 그냥 느낀대로 봐달라"는 말로 대답했다.
그리고 미안한 듯 "헐리우드영화처럼 1백명이면 95명이 같은 느낌을 받는
영화는 싫다"고 덧붙였다.
평론가들은 그의 작품을 "일상을 담은 영화"로 규정했다.
그러나 그는 "일상"이란 단어도 설명하지 않았다.
다만 "나는 내가 진짜로 아는 것들을 영화로 만들고 싶다.
밥먹는 것, 아침공기가 맑은 것 그런 작은 것들이 좋다.
신문의 1면 기사나 사회적 이슈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자신이 만든 두 편의 영화가 모두 불륜이 소재였던 것에 대해서도 이렇게
설명했다.
"그것은 내 나이(38)쯤 되면 쉽게 접하는 단어가 불륜이기 때문 아닐까.
결혼에 대한 갈등을 숨기며 한번쯤 불륜을 저지르고 싶다는 친구들을 보게
된다.
불륜은 일상적인 것이면서 욕망이나 제도에 대한 도전이다"
홍 감독은 또 "관객이 비슷하다고 느꼈으면 그게 리얼한 것"이라고도 했다.
영화속의 일상을 관객들이 저마다의 경험으로 해석하고 그러다 문득
자신을 반추하는, 그러한 긴장관계속의 리얼리즘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것이 관객과 대화하는 홍상수식 화법이다.
< 이영훈 기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17일자 ).
느린 말투, 조금 수줍어하는 듯한 시선이 그의 카메라앵글과 비슷하다.
신작 "강원도의 힘"에서 그는 일상의 풍경을 무심히 담아내는 영화미학을
선보였다.
허겁지겁 보여주고 싶은 게 많았던 충무로영화와 비교해보면 생경한
느낌마저 준다.
작품에 대한 논란과 함께 그는 어느덧 작가주의 감독으로 자리잡았다.
강원도의 힘은 올해 칸영화제에서 "주목할만한 시선"으로 선정됐다.
왕가위감독의 "중경삼림"이 선정됐던 그 부문이다.
축하를 하자 그는 "돈없이 영화를 하려면 칸 같은데서 주목받는게
필요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언젠가 여자친구가 강원도에 다녀온 이야기를 해줬다.
그걸 수첩에 적어놨고 영화로 만들게 됐다.
그렇지만 강원도라는 공간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여행을 떠나고 거기서 겪는 개인적인 경험이 문제다" 주제가 뭐냐는 질문에
그는 "이성적인 관념이나 분석 대신 그냥 느낀대로 봐달라"는 말로 대답했다.
그리고 미안한 듯 "헐리우드영화처럼 1백명이면 95명이 같은 느낌을 받는
영화는 싫다"고 덧붙였다.
평론가들은 그의 작품을 "일상을 담은 영화"로 규정했다.
그러나 그는 "일상"이란 단어도 설명하지 않았다.
다만 "나는 내가 진짜로 아는 것들을 영화로 만들고 싶다.
밥먹는 것, 아침공기가 맑은 것 그런 작은 것들이 좋다.
신문의 1면 기사나 사회적 이슈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자신이 만든 두 편의 영화가 모두 불륜이 소재였던 것에 대해서도 이렇게
설명했다.
"그것은 내 나이(38)쯤 되면 쉽게 접하는 단어가 불륜이기 때문 아닐까.
결혼에 대한 갈등을 숨기며 한번쯤 불륜을 저지르고 싶다는 친구들을 보게
된다.
불륜은 일상적인 것이면서 욕망이나 제도에 대한 도전이다"
홍 감독은 또 "관객이 비슷하다고 느꼈으면 그게 리얼한 것"이라고도 했다.
영화속의 일상을 관객들이 저마다의 경험으로 해석하고 그러다 문득
자신을 반추하는, 그러한 긴장관계속의 리얼리즘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것이 관객과 대화하는 홍상수식 화법이다.
< 이영훈 기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