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F코리아의 멩가슨 사장은 한국이 IMF체제에 접어든 작년 11월이후 부쩍
바빠졌다.

이곳저곳 조찬간담회에 불려다니느라 정상업무에 지장이 생길 지경이다.

재경부 산업자원부 등 경제부처들과 기관들이 주재하는 외국인초청 모임에
한 손으로 꼽을수 없을 정도로 많이 참석했다.

마이클브라운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회장같은 사람도 마찬가지다.

과거 경제부처들이 주한외국기업인들을 부르는 것은 연례행사였지만 IMF
이후 거의 한달에 한번 꼴이다.

재경부 산자부에다 예전에는 없었던 외교통상부(통상교섭본부)까지
끼어들었다.

얼핏보면 외국인투자유치와 주한 외국기업인들의 애로타개를 위해 여러
부처 공무원들이 발벗고나선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지만 자세히 보면 "국내 생색용"이라는 인상을 지울수 없다.

지난달 16일 열린 11개 정부부처 관계공무원들과 주한 미국-유럽 기업인
과의 합동간담회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관련부처 공무원들이 다 모이긴 했지만 상대방의 구체적인 질문에 거의
대부분 전문적인 답변을 못하고 끝나버렸다.

그날 산자부를 제외한 다른 경제부처들은 그저 마지못해 직원 1명을 보낸
기색이 역력했다.

산자부가 생색낼 일에 적극적으로 나설 이유가 없었던 것.

그 결과, 신참사무관이나 갓 자리를 옮긴 서기관들이 부처이름을 걸고
나왔지만 속시원한 답변을 들려줄 수가 없었다.

산자부의 이런 "동문서답"식 외국인간담회를 한달후 재경부도 그대로
되풀이했다.

경제부처들이 주한 외국기업인과의 만남에 경쟁적으로 나서는 이유는
2가지다.

첫째는 대통령이 외국인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서다.

경제부처들이 일에 열을 올리기 시작한 것이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조지
소로스와 마이클 잭슨을 잇따라 만나고나서 부터다.

다른 한 이유는 앞으로 외국인투자유치및 사후서비스 기능이 정부의
핵심적인 새 기능으로 자리매김할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윗분에게 생색내기가 좋으면서 자리도 챙길수 있는 일이니 결코 다른
부처에 양보할수 없는 것.

경쟁은 좋을수도 있지만 문제는 준비없이 서둘다보니 역효과를 낸다는데
있다.

실제로 지난번 전경련회관에서 열렸던 외국인초청 간담회에서 한 일본
기업인은 "여러곳에서 오라고 하지만 맨날 같은 얘기만 되풀이 할뿐 진전된
내용이나 구체적인 실익이 없다"고 정부측의 무성의를 꼬집었다.

정부기구개편에서 외국인투자유치 등 몇가지 업무가 어중간하게 여러부처에
걸쳐지게 되면서 고질병인 부처이기주의가 더 심해지고 있다.

최근 재경부가 건교부의 외국인토지법 폐지를 가로채 발표한 것이나 산자부
와 통상교섭본부가 외국인투자 사절단을 놓고 서로 챙기겠다고 신경전을
펴는 것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금융기관 구조조정업무 이관을 둘러싼 재경부와 금융감독위원회간의 갈등,
금융외교를 강화하려는 외교통상부와 제동을 거는 재경부의 물밑다툼 등도
같은 케이스들이다.

대통령은 "작은정부 효율적인 정부"를 기회있을 때마다 강조한다.

대다수 공무원들에겐 이 말이 "자기 몫을 확실히 챙기지 않으면 자리보전이
힘들다"는 식으로 들리는 것 같다.

키이스 뉴튼 앤더슨컨설팅 사장은 "관료들이 아직 개혁의 필요성을 절실
하게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 이동우 기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