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달초 영국에서 열렸던 ASEM(아시아 유럽 정상회의)은 우리의 외환위기
를 바르게 알리고 위기극복을 위한 다른 나라들의 협조를 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리였다.

오늘날 국제경제 흐름의 커다란 특징 가운데 하나를 꼽으라면 지역내
연계의 강화와 이에 따른 블록경제화를 들 수 있다.

물론 세계경제의 블록화는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이미 지난 30년대 세계 경제는 높은 관세장벽을 무기로 한 블록화의 쓰라린
경험을 가지고 있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2차대전 후 GATT체제를 출범시켰다.

그렇다면 오늘날 진행되고 있는 지역연계와 이에 따른 세계경제의 블록화는
보호무역주의로의 회귀를 의미하는가.

반드시 그렇지 않다.

가장 먼저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오늘날의 경제블록이 지역내의 높아진
상호의존성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상호의존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지역연계를 강화하는 것은 역외국가를
차별하고 배제하기 보다는 지역내의 의존관계를 더욱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가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를 체결한 것은 덩치를
불려 다른 나라를 제압하려는 의도보다는 지역내에서의 자유무역을 통한
시장기반의 확대를 위한 것이었다.

또한 작금의 블록경제화는 다자간 협상체제를 유지하는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보호주의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

오늘날 통상협상은 다자간, 지역내, 양자간 협상 등 다양한 채널과 방법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다.

예를들면 NAFTA의 미국과 캐나다는 유럽연합(EU)의 유럽국가들과 WTO
체제하에서 자유무역을 위한 조치들을 논의하고 있다.

수입쿼터를 철폐한다든지, 관세인하와 같은 조치는 역외 국가들과 자유무역
체제를 진전시키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외에도 최근의 지역연계는 중복이 많다는 특징을 보인다.

아시아 지역에만도 ASEAN(동남아국가연합) 회원국은 모두 APEC
(아태경제협력회의)에 포함되고 또한 ASEM 회원국이다.

NAFTA 회원국인 멕시코는 그밖에도 3개 이상의 지역경제블록에 회원국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회원국끼리 얽히고설킨 이러한 지역경제블록간의 관계는 더 이상
상호대립과 분할이 아니라 통합과 정책협조를 통한 세계 경제의 자유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으로 볼수 있다.

최근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남아국가들이 외환위기를 맞았을 때도 이들
지역의 경제블록은 다시 한번 주목을 받았다.

우리 경제도 체질적으로 대외관계의 비중이 매우 크기 때문에 블록경제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함으로써 무역자유화에 기여하는 방향에서 통상 정책의
기조를 잡아야 할 것이다.

노택선 < 한국외국어대 교수 / 경제학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