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외국인 대우를 해달라고 건의 좀 해줘요"

전경련 사무국엔 요즘 이런 전화가 많이 걸려온다.

자고나면 하나씩 생겨나는 새 대기업정책에 지쳐버린 회원사들로부터다.

여기에는 "외국에 본사를 세우고 한국에 지사를 내면 된다" "외국기업과
합작하면 규제를 피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사람까지 있다.

정부가 외자 유치를 위해 각종 유인책을 내놓으면서 국내 기업들의 소외감
이 커져가고 있다.

시장은 활짝 열어놓고 국내 기업들만 옴쭉달싹 못하게 옭아매고 있다는
불만이다.

기업체 임원들을 만나면 "외국기업들은 스파이크를 신고 뛰는데 우리는
모래주머니를 달고 따라가는 꼴"이라는 볼멘 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다.

이들이 하는 말은 괜한 엄살이 아니다.

규제의 종류와 적용범위를 보면 그렇다.

외국인에겐 "기업천국"을 약속하면서 국내 기업엔 여전히 "규제왕국"인게
엄연한 현실이다.

역차별적 규제는 경제력집중 억제를 목적으로 한 공정거래제도에 집중돼
있다.

또 세제 및 자금조달상의 규제도 만만치 않다.

먼저 경제력집중억제의 경우.지주회사 설립 금지가 대표적인 역차별규제다.

순수지주회사를 금지한 나라는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외에는 찾기 어렵다.

그것도 외국인투자기업(외국인 지분 10% 이상)에 출자할 목적을 갖고 있는
지주회사는 괜찮다.

국내 기업에 출자하려는 순수지주회사만 금지돼 있다.

계열사간 채무보증과 상호출자 금지 등도 우리 30대 대기업에만 적용되는
규제다.

은행 경영참여에서도 우리 기업은 홀대받고 있다.

현재 지분취득한도는 외국인이나 내국인이나 모두 4% 이내.

그러나 외국인은 사전승인을 받으면 추가로 취득이 가능하다.

내국인의 경우는 외국인이 취득한 지분까지만 별도 승인을 받아 취득할 수
있다.

뿐만 아니다.

외국에선 구경하기 어려운 제도나 관행도 적지 않다.

결합재무제표 도입 의무화와 기조실 폐지가 그것이다.

결합재무제표는 아직까지 국제적으로 시도된 적도 없다.

우리 30대 대기업은 이를 작성해야 하고 또 반드시 공개해야 한다.

기조실 폐지를 "강요"하는 것도 우리의 "고유한" 정책이다.

특히 중소기업 고유업종 지정 제도에 가면 역차별 실태는 명백해진다.

지난 94년까지 중소기업 고유업종이던 배합사료의 경우 대기업은 투자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세계적 메이저인 미 카길사가 국내에서 생산해 시장을 잠식한지는
이미 오래다.

안경테 우산 유모차 봉제완구 등 87개 품목은 여전히 중소기업 고유업종
이다.

물론 외국인들은 예외다.

여기다 최근엔 50위 이내 그룹은 재무구조개선계획까지 주거래은행에 보고
하면서 경영을 해야 한다.

내년까지 부채비율도 2백% 이내로 줄여야 하는 압박까지 받고 있다.

역차별은 분명히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또 무역과 투자에 관한 국제적인 룰과도 어긋난다.

세계무역기구(WTO) 등이 견지하고 있는 국제룰은 무차별원칙과 내국인
대우다.

"대기업의 경제력집중 억제를 막기 위해 도입된 규제들은 국내 시장이
완전 개방된 상황에서는 의미가 없다. 경제력집중억제와 중소기업보호에
치중했던 대기업정책을 경쟁촉진정책으로 전환하는 조치가 시급하다"(전경련
이용환 이사)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 권영설 기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2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