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모임] 이경후 <보건복지부 공보관실> .. '축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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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 축구회"의 역사는 그리 오래 되지는 않았다.
2002년 월드컵을 개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한 지난 94년 봄.
제1회 국무총리배 중앙부처 축구대회가 끝난후 국무회의에서 우승팀 장관이
축하받는 모습을 부러워하던 당시 서상목장관이 "우리 부에는 왜 축구팀이
없느냐"는 힐책성 질문에서부터 출발했으니 말이다.
창단 초기에는 70년대 후반에 뛰었던 올드멤버를 포함, 배가 나온 50여명의
동호인이 모였다.
94년 6월 창단식을 갖고 첫 경기를 할 때만 해도 공을 둘러싸고 20명이
몰려 다니는 골목축구 수준이었다.
그러나 창단 5개월만에 참가한 제1회 대한축구협회장배 중앙부처
축구대회에서 우승을 차지, 기염을 토했다.
이 대회에는 모두 29개 부처가 출전했다.
"무적 외인부대"라는 별명을 얻은 것도 이때부터.
이는 매일 아침, 또 주말마다 가졌던 동호인 시합과 산하단체와의 경기에서
모든 선수가 호흡을 같이 한 결과였다.
지금도 서장관과 함께 우승컵으로 축배를 마시던 감격의 순간이 눈에
선하다.
현재 축구동호회장은 오대규 보건자원관리국장.
간부진은 감독겸 주장으로 뛰고 있는 식품의약품안전청 임종규 사무관,
코치겸 선수인 인사계 한창언씨와 선수 뒷바라지를 맡고 있는 총무 오양섭씨
등이다.
주전선수가 잠시 빠진 틈을 타 실전에서 2골이나 넣어 주전자맨에서 일약
주전으로 변신한 전병률 방역과장은 "제2의 최용수"로 불려도 좋을 듯하다.
김미옥 회원과 함께 여성축구회원인 필자는 동호회 홍보부장을 맡고 있다.
보건복지부 축구동호회가 지금까지 유지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보건복지부
가족들의 열렬한 성원 덕분이다.
주말마다 연습과 시합이 있는 까닭에 가족들은 당연히 불만을 가질만 하다.
그런데도 경기때마다 모두 나와 열심히 응원, 선수들의 힘을 북돋아주는
동시에 "가족사랑"을 확인하고 있다.
오늘도 과천청사앞 운동장엔 복지부 축구동호인들의 우렁찬 소리가 아침을
열고 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23일자 ).
2002년 월드컵을 개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한 지난 94년 봄.
제1회 국무총리배 중앙부처 축구대회가 끝난후 국무회의에서 우승팀 장관이
축하받는 모습을 부러워하던 당시 서상목장관이 "우리 부에는 왜 축구팀이
없느냐"는 힐책성 질문에서부터 출발했으니 말이다.
창단 초기에는 70년대 후반에 뛰었던 올드멤버를 포함, 배가 나온 50여명의
동호인이 모였다.
94년 6월 창단식을 갖고 첫 경기를 할 때만 해도 공을 둘러싸고 20명이
몰려 다니는 골목축구 수준이었다.
그러나 창단 5개월만에 참가한 제1회 대한축구협회장배 중앙부처
축구대회에서 우승을 차지, 기염을 토했다.
이 대회에는 모두 29개 부처가 출전했다.
"무적 외인부대"라는 별명을 얻은 것도 이때부터.
이는 매일 아침, 또 주말마다 가졌던 동호인 시합과 산하단체와의 경기에서
모든 선수가 호흡을 같이 한 결과였다.
지금도 서장관과 함께 우승컵으로 축배를 마시던 감격의 순간이 눈에
선하다.
현재 축구동호회장은 오대규 보건자원관리국장.
간부진은 감독겸 주장으로 뛰고 있는 식품의약품안전청 임종규 사무관,
코치겸 선수인 인사계 한창언씨와 선수 뒷바라지를 맡고 있는 총무 오양섭씨
등이다.
주전선수가 잠시 빠진 틈을 타 실전에서 2골이나 넣어 주전자맨에서 일약
주전으로 변신한 전병률 방역과장은 "제2의 최용수"로 불려도 좋을 듯하다.
김미옥 회원과 함께 여성축구회원인 필자는 동호회 홍보부장을 맡고 있다.
보건복지부 축구동호회가 지금까지 유지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보건복지부
가족들의 열렬한 성원 덕분이다.
주말마다 연습과 시합이 있는 까닭에 가족들은 당연히 불만을 가질만 하다.
그런데도 경기때마다 모두 나와 열심히 응원, 선수들의 힘을 북돋아주는
동시에 "가족사랑"을 확인하고 있다.
오늘도 과천청사앞 운동장엔 복지부 축구동호인들의 우렁찬 소리가 아침을
열고 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