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철퍼링스의 정영호사장(48)은 지난 96년 7월말 갑자기 "쇠고랑"을 찼다.

인천지검에 의해 구속된 그의 죄목은 참 특이했다.

건설장비인 굴삭천공기를 개량한 것이 유죄였다.

외국산 굴삭기는 바닥이 수평상태여야 쉽게 천공할 수 있었다.

이에 비해 정사장은 경사면에서도 작업할 수 있도록 굴삭기의 팔을
고쳤다가 구속됐다.

지난 28년간 오직 천공건설장비만 만들어온 그로선 정말 황당했다.

"국산화한 것도 죄가 됩니까"

당시 그는 담당검사에게 이렇게 항의했다.

그럼에도 정사장은 두달간 징역살이를 한 뒤에야 풀려났다.

국산화를 위한 그의 고난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국내 공공기관들이 한결같이 외국산기계만을 선호해서다.

외국산이 아니란 이유 하나만으로 지하철공사장 등에서 끊임없이 퇴짜를
맞았다.

특히 올들어선 천공기에 대해 건설교통부장관으로부터 엄연히 건설기계형식
승인을 받았음에도 관급공사 참여를 차단당했다.

이것 또한 외국산 기계 수입업체들로부터 방해를 받은 탓이다.

부철퍼링스의 천공기는 일반건설업체에선 인기가 높다.

일본제등 외국산기계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자주 해결하기도 한다.

지난 18일의 일이다.

서울 강남 서초인터체인지와 양재자동차학원사이에 있는 한전발주
공사장에서 외국산 천공기가 제대로 작업을 해내지 못한 것을 부철퍼링스의
기계가 1시간만에 처리해냈다.

영등포역사를 신축할 때도 그랬다.

철도청이 처음엔 국산기계를 쓸 수 없다고 거절했으나 외국산기계가
제구실을 못하자 하는 수 없이 이 회사의 제품을 썼다.

남한강교량공사때도 마찬가지였다.

정영호사장은 고등학교 2학년때인 지난 68년 청계천 기계공구상에 들어가
건설장비부품을 만들기 시작한 이후 오직 굴삭천공기 분야에서만 일해왔다.

지난 77년 서울 방배동 방배주유소 뒷마당에서 중장비업체를 차린 그는
천공기 전환장치를 개발하는등 건설장비의 국산화에 힘썼다.

그런 정사장은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이후에도 공공기관들의 외국산기계
선호도가 조금도 개선되지 않은 걸 너무나 안타깝게 생각한다.

정사장뿐이 아니다.

중소기업계는 한결같이 비슷한 지적을 한다.

특히 도로공사는 외국산기계의 선호도가 심하다고 한다.

대관령에 터널공사를 하면서 터널내 통신공사장비를 충분히 국산으로
설치할 수 있는데도 끝까지 외국산을 가져올 것을 요구했다는 것.

또 각종 도로를 포장할 때 국산 특수아스팔트를 사용할 수 있음에도
외국산을 공급해줄 것을 요구한다고.

부산에서 대형다리공사를 할 땐 국산 호이스트가 기술이 뛰어난데도
스웨덴에서 만든 제품을 쓰도록 요구했다고 한다.

이처럼 공공기관의 외국산기계 선호풍토는 무척 심각하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이는 수입업자와 구매자간에 깊은 "이해관계"가 걸려있기 때문이란
건 누구나 잘 아는 사실이다.

그래도 이 관습은 나아질 기미가 없다.

오히려 항의한 기업만 보복을 당한다.

다음 수주를 받지 못하고 만다.

정사장은 이번 만큼은 보복을 받더라도 업계를 대표해 외국산 선호풍토를
개선해보겠다고 다짐한다.

다시 쇠고랑을 차더라도 외화를 아끼고 국내 경제를 살리기 위해 힘을
쏟겠단다.

이제 IMF극복을 위해선 정사장의 용기가 결실을 맺어야 하지 않을까.

이치구 < 중소기업전문기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