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한국경제 전문가인 존 베넷(John Bennet)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한국이 외환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기업의 외형확장 관행과 낙후된
금융시스템, 노동관행 등 3대 과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같은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한국은 보다 심각한
상황에 직면할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또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는데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기업회계의
투명성 제고라고 강조했다.

지난 75년부터 3년간 주한미 대사관에 경제참사관으로 근무하기도 했던
그는 이후 미국무부등에 근무하며 한국경제 전문가로 일해 왔고 지금은
조지워싱턴대에서 한국경제발전론을 강의하고 있다.

최근 한국경제연구원의 초청으로 방한한 그를 만나 외환위기 원인과 해결책
등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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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가 통화위기에 빠진 원인에 대해 다양한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무엇이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보나.

"구조적인 문제가 가장 크다.

낙후된 금융시스템, 재벌의 과다차입문제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우선 재벌의 문제를 보자.

재벌은 과잉 투자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모든 부문에서 확장 일변도의
경영을 해왔다.

이는 공급과잉을 부채질해 결국 생산성 하락으로 이어졌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기업들은 은행에서 돈을 끌어다 생산 설비를 확장하는데 과다한 투자를
해왔다.

그러나 과대평가되어 왔던 자산가치의 거품이 깨지면서 원금조차 갚지 못할
정도로 기업의 재무구조가 악화됐다.

물론 이를 가능하게 한 금융시스템에도 문제가 있다.

혹자는 태국과의 차이점을 들어 한국은 부동산의 경기과열로 인한 거품이
상대적으로 적다고 하는데 이는 틀린 지적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한국 역시 부동산 분야에서 거대한 거품을 안고 있다"

-폴 크루그먼 MIT대 교수는 "아시아 기적은 끝났다"고 잘라 말한 적이 있다.

아시아적 발전모델은 과연 끝났다고 보는가.

"아시아의 기적이 끝났다는 데는 동의하지 않는다.

아시아의 펀더맨틀(기초여건)을 봤을때 경제기적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 이유중 하나는 아시아 각국의 화폐재정정책이 매우 건전하다는 것이다.

높은 저축률과 투자율 그리고 외국기술을 적극 받아들이는 자세도 매우
긍정적인 요소이다.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도 높이 평가하고 싶다.

크루그먼교수는 아시아 기적 종말의 근거로 이 지역에서의 총요소 생산성
증가가 멈췄다고 주장하는데 세계은행등 각종 기관들의 보고서는 다르다.

한국만 보더라도 이는 쉽게 증명된다.

한국의 노동 생산성은 꾸준히 증가해 왔다.

농업중심의 1차산업국가에서 지금은 첨단산업 위주의 세계적인 경제국으로
성장했다.

이태원에서 3달러만 주면 살수 있었던 운동화가 지금은 80달러에 팔린다.

단순가치만 따지더라도 한국의 생산성이 결코 낮아졌다고 볼수는 없다"

-어떻든 현실로 나타난 아시아 통화위기가 전통적인 아시아 성장전략을
무력화시키고 있는 것도 사실 아닌가.

"물론 아시아적 발전모델에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며 이번 위기를 통해
단점들이 상당부분 드러났다.

세계은행이 최근 펴낸 "아시아 경제기적"이란 제목의 보고서도 관료주의가
아시아 위기의 뿌리깊은 한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적절한 지적이라고 본다.

크루그만 교수의 극단적 비관론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지 전적으로 아시아적
생산방식이 옳다거나 앞으로도 똑같은 방식으로 다시 성장가도에 진입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특히 정부관료들이 시장을 마구 주무르는 관행과 관치금융에 의존한 재벌의
경영방식을 개혁해야 한다고 본다"

-IMF의 위기처방이 잘못됐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한국의 경우 과도한 긴축정책이나 고금리를 강요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에 대한 IMF의 처방은 환율을 안정시키자는데 일차적인 목표가 있는
것이다.

지나친 원화가치 하락을 막아보자는 것이다.

따라서 금리를 높이는 것은 필수불가결하다.

리스크를 두려워해 투자를 꺼리는 외국인들의 돈을 끌어오기 위해서도
고금리정책은 필요하다.

다행히 한국 원화의 환율이 최근들어 눈에 띠게 안정돼 가고 있다.

이것은 신뢰가 회복되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지나친 고금리정책이 기업들의 의욕을 꺾고 외국인 투자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맞다.

그러나 너무 빨리 고금리 문제를 해소하려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IMF 처방이 너무 획일적인 것은 아닌가.

나라마다 특수한 환경이 있는데 처방은 천편일률이라는 반론도 적지 않다.

"일부 학자나 정책담당자들은 IMF가 한국에 부과한 이행조건들을 놓고
멕시코와 비교를 한다.

멕시코와는 달리 한국은 외채가 대부분 민간차입인데 똑같은 처방을
내린다는 비판이다.

물론 부분적으로는 옳은 지적이다.

그러나 한국의 민간 차입도 정부 보증이 없이는 존속이 불가능한 것이라는
점에서 다를 것이 없다고 본다.

결국 한국의 민간은행들은 정부 보증을 받고서야 외채만기를 연장하지
않았나"

-한국정부는 IMF의 요구대로 모든 부문에 걸쳐 과감한 개혁을 추진중이다.

개혁의 방향과 속도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개혁은 엄청나게 어려운 정치적인 과정이라 할수 있다.

각 부문의 요구를 하나로 조화시켜 개혁을 추진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정치적 합의 없이 불가능하다.

문제는 고통을 분담하려는 의지에 달려 있다.

다행스럽게도 한국의 개혁은 잘 진행되고 있다는 신호들이 여러 부문에서
보이고 있다.

환율도 많이 안정되고 있고 최근 뉴욕에서 있었던 40억달러의 외평채
발행도 비교적 성공적이었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일부에서는 금리가 너무 높다는 지적이 있지만 이는 장기적으로 봤을때
충분히 해결 가능하다고 확신한다.

다만 금융시스템 개혁은 아직도 부족한 면이 많다.

정부나 은행이 확보한 자금을 아직도 부실기업에 지원하려고 한다는 최근의
몇몇 지적은 그래서 우려할만한 것이다"

-재벌 개혁이 일차적인 타깃으로 꼽히고 있다.

재벌 개혁은 어떤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보는가.

일부에서는 부채비율 2백% 축소 등 재벌정책이 너무 급진적이라고 보는데.

"한국 대기업들이 외부 차입에 과다하게 의존해온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
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상호지급보증이다.

이 문제는 그동안 실제보다 과소평가되어 왔다.

개인적으로 두가지를 제안하고 싶다.

하나는 주식을 팔아 빚을 갚으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산을 팔아서
자금을 충당하라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선 자기자본비율을 높여야 한다.

한국 대기업들의 평균 부채비율이 5백%를 넘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외국인 투자유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외국자본이 한국에 들어오는데 걸림돌은 무엇인가.

"한국 기업들은 값이 많이 떨어진 자산을 내놓으면서 손해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고 있는데 이는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외국인들 입장에서는 리스크를 떠안고 사는 것이다.

장기간 버블이 형성되어 있던 지역에서 적정한 자산가치를 산정하기는 아주
어렵다.

또 하나 외국기업들이 불평하는 것은 "한국은 사업하기 힘든 곳이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것이 투명성의 문제이다.

외국 기업들은 한국 기업의 회계제도를 문제 삼고 있다.

회계가 투명하지 못해 투자를 꺼린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 정부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1월에는 정부나 한국은행조차도 기업들의 단기차입금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를 파악하고 있지 못했다.

그래서 IMF는 한국 정부와 기업의 회계내용에 대해서 6개월마다 공시하도록
합의했는데 이 기간도 줄여 더 자주 공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들면 매분기마다 기업정보를 공개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정보가 오픈돼 있어야 외국인들이 실상을 파악하고 그 기초위에서 믿음을
갖고 투자할 수 있다.

외국자본이 꺼리는 또하나는 임금이 너무 비싸다는 것이다.

한국은 사실 생산성을 상회하는 수준으로 임금을 높여 왔다"

-그러나 실업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것도 현실 아닌가.

더욱이 실업증가에 따른 사회불안이 경제구조개혁에 최대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어차피 가야할 길이라면 어떻게 고통을 최소한으로 줄이느냐가 관건이다.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정부도 예전처럼 강압적인 수단을 사용해서는 안되지만 무엇보다 노동시장
주체의 마인드가 변해야 한다.

이제는 평생 똑같은 방식으로 한 사업장에서 같은 종류의 일만을 할
것이라는 사고방식을 버려야 한다.

물론 이를 위해 노동시장이 유연해져야 한다.

정부는 노동자가 한사업장에서 해고된다 하더라도 곧바로 다른 부문에서
취업할수 있도록 여지를 만들어가야 한다"

-최근 세계은행은 한국경제가 향후 2-3년안으로 회복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은 언제쯤 위기에서 벗어날 것으로 보는가.

"회복시기는 구조조정기를 얼마나 빨리 끝내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나 위기에서 벗어난다고 해서 70-80년대와 같은 고도성장률을 1백%
회복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이미 한국도 첨단기술에 의한 경제발전단계에 와있기 때문에 고성장을
지속한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IMF와의 합의전망을 보면 한국은 올해 0% 또는 마이너스 성장, 내년에는
2%정도의 저성장이 예상된다.

그러나 회복시기가 언제일지는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다.

다만 현재 추진하고 있는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한국은
지금보다 훨씬 심각한 금융공황을 맞이할 수 있다.

자연히 회복시기는 그만큼 늦춰질 것이다.

더욱이 한국경제 회복에는 자체 요소도 중요하지만 일본이나 대만 등이
적지 않은 변수로 남아 있다"

< 정종태 기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