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노동조합과 경영진 간 협상이 마무리될 때쯤 노조위원장을 맡은 친구로부터 근심이 가득 담긴 전화가 온다. 협상 잠정안을 보면 나쁘지 않은 임금인상률이어서 당장 체결해도 될 것 같은데 불만 많은 일부 간부의 눈치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하면 그보다는 더 받는다”라는 식의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한마디로 불만을 키워 노조 집행부를 압박한다. 그러면 자신도 입장을 뒤집어 회사에 다시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다고. 그렇다고 더 나은 임금 인상이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노조위원장도 직업인데 일종의 보여주기식 쇼도 필요하고 연임하려면 인상률을 더 올리지는 못해도 투쟁하고 싸운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고 한다.회사 측에서 누가 교섭에 나오는지를 따지는 소위 ‘급 맞추기’로 몇 달씩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이사가 안 오면 교섭은 없다. 고용노동청에 교섭을 제대로 안 한다고 신고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런데 정작 대표가 오면 목청만 더 높일 뿐이다. 귀가 빨개진 대표는 자리를 뜰 수밖에 없고 노조는 급이 되는 사람에게 목소리를 높였다는 포인트로 조합원들에게 열을 올리며 홍보한다. 이쯤 되면 노사 간 교섭은 근로자 처우 개선이라는 본연의 목적보다 보여주기식, 혹은 분풀이 수준으로 전락한다. 경영진은 이런 경험을 하고 나면 대부분 노조를 싫어하고 피하게 된다.요즘 부쩍 경영 현장에서 노사 간 신뢰가 무너진 모습을 볼 수 있다. 기업은 노조가 앞뒤가 다르기 일쑤라고 푸념한다. 회사 입장을 이해한다고 해놓고 돌아서서는 비방하고, 협력하겠다는 약속을 뒤로한 채 투쟁한다고 목소리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항소심 재판부가 다음달 26일 선고하겠다고 예고했다. 지난 26일 변론을 종결하면서 딱 한 달 뒤로 선고기일을 잡은 것이다. 재판부는 결심 공판에서 “새로운 의견이나 증거가 나올 사건이 아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선고 날짜를 한 달 뒤로까지 늘려 놓은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2심 재판부는 신속한 재판 진행을 위해 그간 나름대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사건 외에 다른 사건을 배당받지 않는 집중심리를 채택했고, 이 대표 측이 요구한 14명의 증인에 대해서도 3명만 인정했다. 그런데 정작 선고 시점에 와서는 한 달간이나 말미를 두고 있다. 항소심의 경우 1심 재판을 통해 이미 사실관계가 대부분 파악된 만큼 변론 종결 후 2주 정도 뒤에 판결을 내리는 것이 통상적이다.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스케줄과 비교해도 이 대표 항소심 재판부의 선고 일정은 석연치 않다. 지난 25일 변론이 종결된 윤 대통령에 대한 헌재 선고는 다음달 중순 내려질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대통령 탄핵 결정도 변론 종결 후 보름 남짓 뒤 이뤄지는데, 그것보다 사안이 훨씬 단순한 이 대표 항소심 선고가 한 달 뒤로까지 밀리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헌재 결정 이후 여론의 향배를 살피기 위한 시간을 벌어 두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그래서 나온다.이 대표는 2심에서 출마 자격이 박탈되는 형량이 나오더라도 출마를 강행하겠다는 뜻을 계속 밝히고 있다. 만약 3월 중순에 윤 대통령 탄핵이 인용돼 5월 중순에 조기 대선이 치러질 경우, 형사소송법상 그때까지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일국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의 법의식
금융감독원이 기업의 경영 활동을 심사해 유상증자 허용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한다. 사실상 ‘유상증자 허가제’ 도입으로, 재량권을 넘은 월권이자 전형적 관치행정이다.금감원은 어제 16개 증권사와 간담회를 열고 유상증자 증권신고서 심사 기준을 공개했다. 주식 가치 희석화와 일반주주 권익 훼손 우려, 재무위험 과다 등에 해당하면 1주일 내로 집중 심사해 유상증자 승인 여부를 따지겠다고 한다.우선 인수합병(M&A)이나 신사업 진출을 위한 유상증자는 심사 대상이 된다. 금감원이 기업보다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과 전략적 필요성에 대한 이해도가 높을 수 없다. 무슨 수로 적정성을 평가하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경영권 분쟁 중 유상증자도 마찬가지다. 적대적 M&A로 회사가 통째로 넘어갈 위기 상황에 처해도 금감원 허락부터 받아야 한다. 최근 3년간 재무 실적과 재무구조 악화 여부를 보겠다는 대목에선 말문이 막힌다. 기술기업은 연구개발로 기존 자금을 소진하면 증자할 생각 말고 그냥 망하라는 얘기나 다름없다.금감원은 반복적인 정정신고서 요구 등으로 이미 유상증자 문턱을 크게 높였다. 지난해 유가증권시장의 유상증자액은 약 2조원으로 전년 대비 61% 급감했다. 올 들어 유상증자에 나선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는 태영건설 한 곳뿐이다.유상증자는 아무리 좋은 취지라도 일정 부분 주주가치 희석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신규 자금으로 회사를 성장시키면 더 큰 이익을 주주에게 되돌려줄 수 있다. 당장 주가가 떨어지니 유상증자는 악이라는 식의 접근은 금물이다.금감원은 금융위원회로부터 위임받은 사건을 검사하고 감독하는 게 본연의 업무다. 그런데도 이복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