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화는 독특한 회화장르다.

오랜기간에 걸쳐 정착된 제작기법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나름대로의 개성을
집어넣어야 한다.

물론 개성을 발휘하는데도 한계가 있다.

종교적 신비감이나 의미전달체계가 훼손되지 않는 한에서 개성이 가미될
수 있을 뿐이다.

일반회화에선 창의성과 독창성이 가장 중요한 미덕이지만 불화에선 반드시
그렇지는 않은 셈이다.

불화제작은 원화를 똑같이 모사하는 임모에서 시작한다.

전통제작기법에 따라 원화를 있는대로 그려내는 것이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면 기존작품 일부를 교합하는 변용의 단계로 들어선다.

이어 자신의 개성을 섞어넣어 창신을 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른다.

불화가 한국회화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불화작가가
거의 없는 것도 불화제작이 이처럼 까다롭기 때문이다.

중견동양화가 이태승(용인대 예술대학 교수)씨가 29일~5월8일 서울 종로구
사간동 법련사내 불일미술관(733-5590)에서 여는 "이태승불교회화전"은 이런
점에서 주목되는 전시회다.

20여년동안 역대 명화 진적을 임모하고 실물을 사생하는 등 전통회화수련을
해온 이씨는 우리나라에 몇 안되는 불화작가로 꼽힌다.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은 11점.

일본 지은원에 소장돼있는 고려불화 "관경변상탱"을 임모한 작품을 비롯
용인대가 소장하고 있는 "수월관음탱"을 변용한 작품, 중국 북송대
"천수천안관세음보살탱"을 변용, 또는 창신한 작품 등 다양하게 출품한다.

조선초기 "오백나한도"를 변용한 작품은 가로 1천82cm, 세로 42cm의
대작으로 그리는데에만 2년이상 걸렸다.

이씨는 "불화는 채색의 색감 두께 질감 무게 변색정도 설채순서 등을
판별해내기위해 높은 감식안과 다양한 실기경험이 필요하다"면서 "이번
전시에선 고려 및 조선전기, 중국 당.송시대 불화를 임모한 작품과 창신한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정환 기자>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