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만 공기업 가족이 흔들리고 있다.

과거 정권교체기와는 다르다.

이번엔 정말 수술대에 올라가야 할 상황이다.

벌써 기획예산위원회 감사원 경영평가위원회등에서 공기업개혁의 칼날을
들이대고 있다.

어쩌면 외국인 밑에서 일할 수도 있다.

회사가 송두리째 날아가거나 다른 공기업에 합쳐질지 모른다.

민영화대상에서 빠진다고 해도 강도높은 경영혁신이 기다리고 있다.

"국민의 기업에서 국가를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으로 살아왔는데 요즘처럼
자괴감이 든 적은 없습니다"

20년간 모 정부투자기관에서 일해온 L씨(49).

퇴근후 학원에 다닌다.

부동산중개사 자격을 따놓으면 재취업에 도움이 될까해서다.

명퇴신청은 해놓았다.

퇴직금으로 1억원이상을 받을수 있는 L씨는 그래도 나은 편이다.

갓 입사한 젊은 사원들은 일도 해보기 전에 쫓겨날지 모른다.

공기업은 취업준비생들에겐 "안정된 직장"의 트레이드마크였다.

최고경영자 자리가 공석인 공기업은 더욱 술렁거린다.

직원들은 아예 일손을 놓았다.

주택공사등 일부 투자기관의 단체장엔 정치인들이 속속 들어앉았다.

관광공사등 비교적 전문경영인출신 사장을 맞은 공기업은 자체경영혁신
작업에 착수했다.

한국전력과 한국중공업은 사장을 공채한다고 광고를 냈건만 앞날이
불투명하다.

이런 어수선한 상황에서 최고경영진의 후임자가 미정인 공기업의
임원들에게 부하직원의 결재서류가 눈에 들어올 리 없다.

"모 투자기관에 1억5천만원어치의 공사를 진행하고도 대금을 못받아
회사가 부도위기에 몰린 지경입니다"

K건설 P사장의 하소연이다.

그렇다고 사기가 땅에 떨어진 공기업에 돈을 내놓으라고 독촉하기도
더욱 어렵다.

공기업 종사자들은 이제까지 준공무원, 공직자로 불렸다.

국민의 세금을 지원받는 이유 때문에 감사원감사 국정감사등 일년내내
감사노이로제에 걸려 살아왔다.

업자로부터 돈을 받아도 민간인처럼 배임수재가 아닌 뇌물수수죄에
해당됐다.

그러나 이젠 정리해고 회오리에 휩싸인 일반 사기업과 다를 바 없다.

30만 공기업 종사자의 10%만 정리해고돼도 3만명이 길거리로 쫓겨나온다.

한국통신을 주축으로 8개 공기업 노조가 모여 최근 전국공공노동조합연맹
(공공노련, 위원장 김호선)을 결성했다.

정부와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조성되고 있다.

공기업 노조의 생존권 투쟁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각이 곱지만은 않다.

이유야 어쨌든 공기업은 국민들에게 비효율과 방만경영의 대명사였다.

기획예산위는 6월까지 공기업 민영화방안을 확정할 방침이다.

이후 공청회등을 거치면서 구체적인 시행방안을 놓고 이해당사자간에
뜨거운 논란을 벌일 것은 불보듯 뻔하다.

<정구학 기자>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