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2월초 수원지검이 발표한 한 사건으로 국내 전자 통신업계에 초비상이
걸렸다.

삼성전자 반도체부문과 LG반도체의 전.현직 연구원들이 64메가D램 핵심기술
을 대만업체에 팔아넘긴 혐의로 구속된 것.

지난 89년에 삼성전자를 퇴직한 한 연구원이 벤처기업을 세운뒤 삼성전자와
LG반도체에 근무하는 연구원을 상대로 파격적인 조건으로 스카우트를 제시,
반도체 설계도면과 회로도 등 기밀자료를 복제하는 방식으로 기밀을 빼내온
것으로 드러났다.

"사람보안"에 실패해 "철옹성"을 자랑하던 국내기업 보안시스템의 약점을
그대로 드러낸 사건이다.

총성없는 전쟁으로 비유되는 경제첩보전.

이제 산업스파이전은 경쟁기업간 문제를 넘어 국가차원으로 접어들고 있다.

국내 기업들도 국가를 넘나드는 산업스파이로부터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다.

특히 일부 신제품 경쟁에서 선진국과 어깨를 겨루는 전자 통신업계는
그동안 국내 기술이 음성적으로 유출될 가능성을 반신반의해 왔다.

그러나 이번 64메가D램 핵심기술 해외유출 사건으로 국내기술의 해외유출이
사실로 드러나 큰 충격을 받고 있는 모습이다.

정문앞 전자감시장비, 유출디스켓 자동소거장치, 팩시밀리와 전자메일에
대한 첨단 보안장치..

삼성 LG 등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춘 대기업들의 보안시스템현황이다.

대기업은 물론 국내 정보기관에서도 견학올 정도로 "완벽"을 자랑해 왔다.

그러나 최첨단 장비를 동원해 각종 기밀문서에 대한 단속을 해봤자 "사람
관리"에 실패하면 첨단장비도 한낱 고철에 지나지 않는다는 교훈을 얻는데
값비싼 대가를 치른셈이다.

국내기업들의 사람관리는 허술하기 짝이 없다.

업무고과평가에 "보안사항"을 찾아볼수 없다.

보안교육과 관련된 정규 교육프로그램도 있으나 마나다.

퇴직자들에 대한 사후교육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반도체 전자등 기술개발경쟁이 치열한 업체에 몸담았다 퇴직하는 직원들
에게 영업비밀보장 서약서를 받는 외국과 대조적이다.

연구원 개개인의 이기주의경향도 기밀유출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개발연대에는 개인차원을 넘어 애국차원에서 연구직에 종사했으나 최근들어
개인의 성취나 보상을 더욱 중요시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대기업을 그만둔뒤 벤처기업을 창업해 운영하다 부도를 내면 첨단기술을
탐낸 외국업체들이 고액에 스카우트해 가고 있는 실정이다.

관련법규도 느슨하다.

국내에는 부정경쟁방지법 영업비밀보호 조항에 불과하다.

형사처벌도 현직 종업원에 한정돼 이번 삼성 LG전자 64메가D램 반도체
핵심기술불법유출사건처럼 전직사원들의 범행은 처벌이 어렵다.

또 처벌내용도 3천만원이하 벌금이나 3년이하징역으로 가볍고 국외 유출시
가중처벌규정이 없는 것도 허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당초 산업스파이법안제정을 검토했던 정부도 미국 등
선진국과의 기술수준이나 상업환경이 다르다는 이유로 기존 영업비밀보호
조항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에 비해 미국은 영업비밀보호법과 경제스파이법 등 특별법이 마련돼
있으며 현직 종업원뿐만 아니라 모든 침해행위자를 형사처벌토록 하고 있다.

IMF이후 심화되는 경기침체와 구조조정과정에서 감원으로 해고된 고급
엔지니어들의 "해외유출"이 가속화되고 있다.

산업스파이들의 기밀유출행위는 갈수록 첨단화되고 있다.

정부와 국내 업체들의 핵심기술인력의 보다 철저한 관리와 산업스파이
규제법의 강화가 절실이 요구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 김동민 기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2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