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역사를 되돌아 볼 때 너무나 단절로 점철된 역사가 아닌가 싶다.

가깝게는 같은 뿌리로 이어져 있는 5공화국과 6공화국이 단절의 비운을
맞았고, 6공화국을 바탕으로 출범한 문민정권도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다는
구실로 군사정권과의 단절을 선언하고 말았다.

하기야 비단 최근의 일만이 그런 것은 아니고 우리 역사의 과정을 봐도
이전 시대 어느 나라의 정통성이 그 다음시대로 이어진 경우는 없었다.

고려 5백년의 역사는 그것으로 끝나고 조선 5백년의 역사가 다시 새롭게
시작된 것이다.

이것을 두고 일본의 사회평론가 고무로 나오기(소실직수)씨는 그의 저서
"한국의 비극"속에서 우리의 단절 문화, 단절의 역사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한국의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를 놓고 볼 때 이 두개의 도자기는 기술적으로
아무런 연관이 없다.

고려청자는 그 빛깔에 생명이 있으나 백자는 빛깔이 아니라는 점이다.

일본 같으면 그 두 도자기 사이에 중간과정의 도자기가 있으련만 한국은
그것이 없다.

그러니까 고려 5백년의 역사는 고려자기로 끝났고, 조선 5백년의 역사는
조선백자로 끝난 것이다"

고무로씨의 지적대로 우리는 역사의 연속성이 애초부터 없는 나라인지도
모른다.

일본의 경우 가업을 전승하고 계승하는 전통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업의
경쟁력으로 이어졌다.

한 조직의 장을 승계하는 방식도 전임자는 오랜기간 후임자를 양성해
가면서 조직 내부의 컨센서스를 동원, 후임자의 승계를 암묵적으로 승인받아
이양하며, 후임자는 전임자의 훌륭한 치적을 바탕으로 더욱 발전시킬 것을
약속하는, 이른바 레볼루션(Revolution)이 아닌 에볼루션(Evolution)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전임자의 치적은 모두 잘못되었으니 새롭게 혁신해야
한다는 레볼루션을 강조하고,또 그래야만 신선하다고 박수를 보내는
사회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