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광선 <중앙대 경영대학장>

마땅히 금융개혁이 추진되고 있어야 할 시점에 관치금융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들린다.

은행장들의 인사설, 중소기업 대출확대의 독려, 부실기업대출의 출자전환
권장 등이 직.간접적 경영개입사례로 지적된다.

기업 구조조정 촉진을 위한 은행의 역할 강화나 금융기관 자신의
경영혁신이 거의 정부주도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이러한 우려에 일조했을
것이다.

또한 규제완화와 시스템구축에 의한 금융개혁 노력은 미미하고 정부의
감독권이나 재정지원을 앞세운 시장개입에 의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가
두드러진 것도 그러한 우려의 근거로 작용했을 법 하다.

은행의 전략적 의사결정에 관한 한 은행장이나 이사회의 역할은 없고
감독기관이 사실상 이들의 역할을 대체하는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

경영진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그 행동을 규율하는 이사회 자본시장
금융서비스시장 등 기업내외부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되어야 한다.

은행이라는 기업을 경영하는 경영진이 주주들과 유리되고 기업가적 동기나
역동성을 지니지 못한다면 선진국 금융기업들이 보여주는 초대형합병이나
구조조정등 경영혁신을 기대할 수는 없다.

따라서 금융개혁은 은행의 기업성 회복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로 주주들의 이사선임권에 대한 제한을 철폐해야 한다.

현재의 시중은행 사외이사 선임 방식은 지분순에 따라 일정수의 주주 또는
그 지명자를 자동적으로 사외이사로 선임하는 것이다.

이 제도는 사실상 주주들의 자유의사에 의한 이사선임권을 박탈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이 제도는 주총에서 과반수 주주의 합의에 의해 이사를 선임하고 이들에게
경영권을 부여하는 정상적인 이사선임 및 경영권 창출 방식과는 크게 다르다.

특히 이사로 선임된 주주들의 대부분이 4%에도 훨씬 못미치는 지분을
보유한 소액주주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이 전체주주의 이익을 위해서
행동할 인센티브는 미미할 것이다.

지분순에 따라 사외이사들이 자주 바뀌는 것도 이사회 운영의 안정성을
해친다.

둘째, 이사회 구조를 개편해야 한다.

이사의 수를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줄여야 주요의사결정에 대한 이사들의
적극적 참여와 공개적이고 실질적인 토론을 기대할 수 있다.

이사회의 주요기능중 하나가 경영진 평가와 보수 결정및 이들에 대한
임면권의 행사이므로 지금처럼 이사회에 다수의 사내이사가 참여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셋째, 은행장 선임권을 주주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공익대표니 전임은행장이니 소액주주대표니 하는 사람들이 참여하는
은행장추천위원회에서가 아니라 주주들이 선출한 사외이사들이 후보를
추천해야 한다.

넷째, 은행주식 소유한도를 10%보다 더욱 확대하거나 완전철폐해야 한다.

주식소유 제한은 비효율적 경영진의 경질을 위한 적대적 수단의 이용을
불가능하게 해 자본시장의 경영규율기능을 무력화시킨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은행 소유제한을 철폐하는 것이 바람직한 이유는
경영권이 확립되지 않으면 감독을 빌미로 한 정부의 경영개입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물론 소유제한을 철폐할 때는 대량주식소유에 대한 엄격한 자격요건과
대출한도를 설정해야 한다.

지배주주나 지배주주그룹의 전횡을 방지하는 데는 감독강화 뿐 아니라
여타주주들의 감시기능 활성화도 필요하다.

상법개정에 의해 도입될 예정인 누적투표제는 지배주주그룹의 전횡방지에
기여할 수 있다.

다섯째, 경영진의 인센티브를 대폭 개선해야 한다.

경영자들에 대한 임면권을 주주들이 외부 간섭없이 행사할 수 있게 하여
경영성과만 좋다면 은행장 등이 그 직위를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경영자들의 주식보유를 권장하고 급여의 상당부분을 주식옵션으로 지급하는
등의 인센티브 급여제도 필요하다.

사외이사들에게도 이러한 제도를 시행해야 할 것이다.

이들에게 회의참석에 대한 거마비 정도의 보수만 지급한다면 이들의
경영성과 향상에 대한 적극적 기여를 전혀 기대할 수 없고 사외이사제는
유명무실화될 것이다.

금융개혁을 위한 정부의 역할이란 당국자들이 누차 강조해왔듯이 사전적
규제를 철폐하고 경영개입을 억제하면서 사후감독에 행정력을 집중시키는
것이다.

금융산업의 구조조정 촉진을 위해서도 정부는 자력으로 회생할 가능성이
없는 부실기관을 골라내 과감히 퇴출시키는 것에 만족해야 하며 더 이상의
구조조정활동은 당해기관의 경영진과 주주의 판단에 맡길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