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아산에 있는 동영섬유.

고급 수영복원단을 제조해 연간 4천만달러어치를 수출하는 알짜기업이다.

기술력이 탄탄해 주문도 계속 느는 추세였다.

그런 회사가 지난 2월초 부도를 냈다.

수출과정에서 환차익이 생겨 ''떼돈''을 벌어도 시원치 않은데 말이다.

부도배경은 물론 자금난이다.

다국적기업인 듀퐁 등으로부터 외상수입한 원자재(스판덱스) 대금을 결제
하면서 20억원가량의 환차손을 봤다.

시설투자에 썼던 외화자금의 상환부담도 환율이 오른 만큼 늘어났다.

더욱이 현금없이는 원자재를 구할 수 없게 됐다.

강종구 관리과장은 연초 운영자금수요가 평소보다 세배이상 불어났다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IMF(국제통화기금)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IMF사태이후 기업부도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11월 1천4백69개였던 부도업체수가 12월 3천1백97개로 급증했다.

이같은 부도사태는 좀체 진정되지 않고 있다.

부도업체중 20%이상이 수출과 관련있는 기업이라고 무역협회는 분석했다.

줄잡아 IMF사태이후 2천~3천개의 수출생산기반이 무너진 셈이다.

금리가 치솟으면서 자금수요는 늘었는데 금융기관은 무차별적으로 여신을
회수해갔다.

때문에 수출기업까지 무더기로 쓰러졌다.

공동브랜드 수출로 잘 알려진 가파치도 지난해 12월 그래서 부도를 냈다.

성상현 가파치 사장은 "정부의 종금사폐쇄조치로 17억원의 차입금을 연장
받지 못한데다 뉴코아 태화 등 납품백화점들의 부도로 수십억원의 자금이
묶여 낭패를 보게 됐다"고 말했다.

경남 함안에 있는 한국제강도 제2금융권의 상환압력에 견디다 못해 4월초
부도를 냈다.

철근과 빌레트 등을 생산하는 이 회사는 환율상승으로 수출호기를 맞았으나
결국 이 기회를 잃어버린 것이다.

수출개미군단이 무너지는 또다른 배경은 원자재난이다.

유정석 산업자원부 산업진흥반장은 "원자재 수급동향이 호전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중소 제조업체들은 여전히 극심한 원자재난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원자재단가가 상승한데다 현금이 있어야 원자재를 살 수 있어서다.

남양주시에 있는 D화학은 캐시미어 이불 등의 포장에 쓰이는 비닐백을
생산하는데 원자재를 구하지 못해 일손을 놓고 있다.

담보가 없어 원자재 외상수입은 엄두도 못낸다.

생산을 못하면 기업은 쓰러지게 마련이다.

무역전문가들은 산업기반이 무너져 수출기반이 계속 약화될 경우 수출전망
은 대단히 어둡다고 우려했다.

따라서 수출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경제체질부터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먼저 제품 경쟁력있는 중소업체의 부도는 최대한 막아야 한다.

이를 위해선 담보위주의 대출관행이 바뀌어야 한다.

은행이 옥석을 가려 신용으로 대출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경영자질이 뛰어나고 수출전망이 밝은 기업은 공장을 계속 돌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중소업체간 원자재를 공동구매하는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그래야 안정적으로 원자재를 공급받아 가동률을 높일 수 있다.

최근 위축되고 있는 산학연 공동연구개발노력도 활성화돼야 한다.

기업들이 기술우위를 바탕으로 해외시장을 효율적으로 공략하기 위해선
이런 노력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특히 어려울 때일수록 기업들은 기능인력을 양성하는데 힘써야 한다.

김재용 (주)대우 경영기획본부장은 "생산기반이 안정되지 않고는 해외에서
수출영업을 할 수 없다"며 "지방자치단체 등이 수출유망업체를 발굴해
자금을 지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이익원 기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