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윤재 < 한얼종합법률사무소 변호사 >

우리나라 국민의 47%가 세입자라고 한다.

그러다보니 집없는 사람과 집 있는 사람간의 관계가 늘 관심의 대상이고,
때로는 이 관계에서 생기는 일이 사회문제화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지난 90년에 턱없이 오르는 전세값 때문에 전세보증금을 마련할
수 없는 사람들이 목숨을 끊는 일도 있었다.

그런데 요즘 전세값이 폭락하면서 전세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게 된
집주인들이 세입자의 눈치를 보게 되었고, 그래서 이 전세보증금을 둘러싼
분쟁이 법정으로 이어지는 일이 늘어났다고 한다.

우리가 남의 집을 빌려서 사는 경우를 가리켜서 전세라고도 하고 때로는
임대차라고 해서 두가지 용어를 혼용해서 사용하고 있는데, 법률적으로
정확하게 말한다면 남의 집을 빌리는 방법에는 전세권을 설정하는 경우와
임대차계약을 체결하는 두가지가 있다.

전세권이라는 것은 집이나 사무실을 빌리는 사람이 전세금을 지급하고서
다른 사람의 부동산을 자신의 용도에 맞게 사용하고 수익하는 권리를
말하는데, 전세권을 설정한 기간이 끝나거나 당초 약정한 사유가 발생돼서
전세권이 소멸하게 되면 목적부동산으로부터 전세금을 돌려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전세권에는 인정된다.

그렇기 때문에 전세권은 법률적인 의미에서 볼 때, 남의 부동산을 사용,
수익할 수 있는 용익물권이면서 한편으로는 전세금의 반환을 담보할 수 있기
때문에 담보물권으로서의 역할도 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전세금을 낸다고 해서 다 전세권을 설정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우리 민법에서 말하는 전세권이라는 것은 등기부등본에 전세권을 설정
했다는 사실을 등기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전세권 설정등기가 된 경우에
한해서만 전세권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현실적으로 이 전세권이 이용되는 빈도는 매우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이유는 전세권을 설정하기 위해서 전세권설정을 할 때에 등기비용과
등록세 등 비용이 들어가고 또 부동산 소유자의 입장에서는 자신 소유의
부동산 등기부등본에 담보를 설정한다는 것 자체를 꺼림칙하게 여기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다보니 전세권은 주로 대형건물에 입주하는 회사들이 설정할 뿐 주택
이나 중소규모의 사무실을 빌리는 경우에는 전세권설정이 아닌 다른 방법이
사용되는데, 바로 임대차계약을 체결하는 것이다.

임대차계약은 그 내용에 있어서는 일정한 보증금을 내고 집을 빌린다는
점에서 앞에서 얘기한 전세권과 다른 차이가 없다.

전세로 할 경우에는 전세권 설정시와 마찬가지로 부동산 싯가의 6할 내지
7할 정도의 전세보증금을 내고, 임대기간 동안 별도의 임대료(법률적으로는
차임이라고 함)를 낼 필요가 없다.

전세가 아닌 월세의 경우에는 비교적 소액의 보증금만 내고 매월 임대료를
내게 된다.

이처럼 임대차계약의 경우도 전세권을 설정하는 경우와 비교해 보면 보증금
을 내고 부동산을 빌린다는 점에서 별 차이가 없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세권과 임대차는 가장 중요한 문제, 즉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방법에서 큰 차이가 있다.

전세권의 경우에는 등기부에 등기가 되고, 담보물권으로서의 효력이 있기
때문에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되면, 당해 부동산을 경매해서라도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게 된다.

반면에 임대차의 경우에는 단순히 집주인과 세입자간의 채권적 관계에
불과하기 때문에 목적 부동산이 제3자에게 양도되면 부동산을 임차한 임차인
이 새로운 소유자에게 대항할 수 없고, 전세금도 반환받을 수 없게 된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서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측면에서 주택임대차보호법을 제정해서 세입자가 주민등록을 하고, 임대차
계약서에 확정일자를 받아서 대항력을 갖추게 되면 전세권을 설정한 것과
동일한 효력을 인정해서 보증금을 돌려받을수 있도록 하고, 또 일정한
소액보증금의 경우에는 경매전에 이런 대항력을 갖추게 되면 일정한 한도
까지는 우선적으로 변제받을수 있다.

반면에 주택이 아닌 상가의 경우에는 주택임대차보호법과 같은 보호를
제공하는 법률이 없는 관계로 상가나 건물주인이 파산한 경우에 세입자들만
피해를 보는 경우를 종종 보기 때문에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입법이 필요
하다는 논의가 일찍부터 있어 왔지만 아직까지는 대책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

결국 현재 일어나는 문제점들은 과거부터 예측이 가능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대처방안이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뚜렷한 방안마련이 쉽지 않다.

따라서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법원에서 시행하고 있는 것처럼 임대보증금의
반환시기를 조금 늦추어주는 대신 그 기간에 대해서는 일정한 지연이자를
가산해서 지급해 주는 방법이나, 임대보증금을 인하해서 조정된 가격으로
임대차계약을 갱신하는 방법 정도를 생각할 수 있는데, 전자의 방법은
집주인의 경제상황이 급격히 악화될 경우 보증금 회수가 곤란하게 될 수
있고, 후자의 방법은 부득이한 사유로 이사를 가야만 하는 사람에게는 적용
하기가 곤란하다.

또한 요즘 논의되고 있는 전세보증금에 해당하는 금액만큼의 약속어음을
발행해서 이를 공증하는 방법도 집주인의 경제상황 악화시 무용지물이 될
소지가 있다.

결국 이러한 점을 감안한다면 현재의 상황에서 전세보증금의 반환과 관련
해서 세입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법원에서 전세보증금의 분할반환 및
미반환부분에 대한 이자지급의 방법이 보다 효과적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요즘 일어나고 있는 전세보증금 반환을 둘러싼 소용돌이를 보면서 왜 다른
나라에는 없는 전세보증금이 우리나라에서만 유지되어야 하는지, 이 제도의
전면적인 개선, 예를 들면 미국식으로 전세라는 개념대신 월세를 임대차의
기본으로 정해 보증금은 마지막 한달치만 예치하도록 하고 대신 월세를 내지
않을 경우에는 정식재판이 아닌 신속한 간이절차에 따라 즉시 명도가 가능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지 않을까 판단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