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은행은 지난달 30일 두툼한 책자 한권을 은행감독원에 냈다.

제목은 "경영정상화계획".

분량은 무려 8백20페이지에 달했다.

이중 눈길을 끈 것은 인수합병(M&A)에 관한 사항.

내용이 획기적이어서가 아니라 보잘것 없어서다.

M&A에 언급한 분량은 불과 1쪽.

내용도 원론적 수준에 불과했다.

"은행간 M&A본격화에 대비, 필요할 경우 M&A대책반을 구성하고 주도적
M&A를 적극 고려한다"는게 골자였다.

비단 상업은행만이 아니다.

같은날 은감원에 자구계획서를 제출한 12개 은행이 한결같았다.

"분량은 은행당 8백-1천쪽에 달했으나 합병계획에 관한한 강원은행
외에는 별다른 내용이 없었다"(은감원관계자)

실제 조흥 상업 동남 대동은행등이 M&A에 대한 검토의견을 피력했으나
그 분량은 1쪽을 넘지 못했다.

말하자면 마지못해 M&A검토의견을 삽입했으나 실제 추진의지는
없어보인다는게 은감원의 분석이다.

은감원 고위관계자는 "부실은행간 합병이든, 우량은행간 합병이든
자발적 합병을 기대하는건 힘들다는게 자구계획서의 특징"이라고 평가했다.

실제가 그렇다.

올해초 대동은행은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에 동남은행과의 합병중재를
요청했었다.

그러나 동남은행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지난 95년과 96년엔 정부주도로 각각 외환은행과 국민은행, 조흥은행과
국민은행간 합병이 추진되기도 했다.

그러나 해당 은행 경영진은 들은 체도 안했다.

이처럼 은행간 합병이 힘든 이유는 여러가지다.

가장 큰 원인은 직원들의 반발과 경영진의 의지 부재다.

당장 합병이 단행되면 상당수 직원들은 일자리를 잃을수 밖에 없다.

이헌재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은 "합병은 1+1=2가 아니라 1+1=1.2다"라고
말했다.

0.8에 해당하는 점포와 인력감축은 불가피하다는 뜻이다.

상황이 이런 만큼 직원들이 합병을 달가와할 리 없다.

조흥은행이 내부적으로 "앞으로 2년안에 반드시 합병을 성사시킨다"는
방침을 정하고도 자구계획서에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것도 바로
직원들의 동요를 우려한 때문이었다.

경영진들도 직원들과 다를게 없다.

합병이 실시되면 경영진들은 원칙적으로 자리를 내놓아야 한다.

경영진들이 이를 앞장서 추진할리 만무하다.

"일단 합병을 성사시킨다는 원칙은 정했지만 경영진의 태도에 따라
언제든지 뒤집힐 수도 있다"

조흥은행 관계자의 말이다.

이렇게보면 은행구조조정방안중 자발적 합병은 제외하는게 합리적일
것 같다.

<하영춘.이성태 기자>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