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옥자 < 서울대 교수.한국사 >

최근 역사학계에서는 조선 망국의 책임을 물어 "암주(세상돌아가는데
어두운 어리석은 임금)"로 평가절하되었던 고종에 대한 재조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논의의 골자는 실제 고종은 현명하고 똑똑한 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제에 의해 왜곡되고 당시 세계질서의 재편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빠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평가에 대하여 석연치 못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은
"그렇게 뛰어난 지도자가 있었는데 왜 나라가 망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명쾌하게 끌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세계질서가 바뀌고 이질적인 세계관을 가진 문명이 밀고 들어왔다
하더라도 그러한 외세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고 대비책을 세워 국민상하가
일치단결하여 대응하였다면 그렇게 허무하게 망국으로 결말이 나지는
않았으리라는 것이다.

모든 책임과 결과를 상황변화로 돌리면 그 상황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의지와 노력은 상황논리에 함몰되고 만다.

지금 우리가 처한 사태를 상황논리의 측면에서 이해하기 위하여 프랑스
금융전문가가 분석한 바 "국제적인 투기자금이 아시아의 금융위기를
초래하였다"는 말을 되새겨볼만 하다.

그러한 국제적인 투기자금을 보유하고 주도권을 행사하는 나라가 과연
어느 나라인가에 논의의 초점을 맞출 수 있다.

또한 국제금융에 정통하다는 프랑스의 어느 교수가 "IMF는 결과적으로
국제투기꾼들을 지원하는데 급급한 상황이므로 국제투기세를 부과해야 한다"
고 주장하고 "아시아 금융위기는 국제금융시장의 개방과 무차별 이동에서
비롯됐으며 자본시장개방을 촉구해온 서방 선진7개국(G7)의 금융당국이 다른
나라의 금융제도를 개혁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앞뒤가 안맞는 행위"라고
비판했다는 보도는 오늘의 사태에 대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아울러 국제 이동자본의 70%가 생산활동과는 전혀 관계없는 "순수 투기
자본"이라는 보도도 눈여겨볼만 하다.

이러한 분석이 서방의 양심적 지성의 소리인지, 아니면 병주고 약주는
사후 약방문인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그러나 그말의 함의에는 서방 선진국들이 우선 국제금융시장의 개방을
요구하고 다음으로는 금융제도를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자신들이 제시한
틀에 맞추라고 강요한다는 의미만은 분명히 제시되어 있다.

이것은 19세기 후반 개항과 개국을 요구하고 곧이어 개혁이라는 미명하에
모든 문물제도를 자신들의 의도대로 바꿀 것을 강압하던 상황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 서세동점의 사태를 당하여 조선이 일방적으로 자신들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고 하여 "쇄국주의"로 규정하고 빨리 문호를 개방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선이 망했다는 억지춘향의 역사해석을 강요하였고, 그러한
해석을 1세기에 걸쳐 일말의 회의도 없이 금과옥조의 교훈으로 삼아온 것이
우리의 의식구조이다.

우리의 경제체제를 IMF가 요구하는 대로 뜯어 고치지 않아서 우리가 현재
이 난국을 당하고 있다는 주장은 19세기말 서구제국이 동양에 요구하고
일제가 우리에게 요구했던 개혁을 빨리하지 않고 쇄국을 하여 망국에
이르렀다고 하던 주장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작금의 문제는 단순히 경제만의 문제도 아니고 눈앞의 현상만으로 설명될
수 있는 간단한 일도 아니다.

1세기동안 서양을 배우기 위하여 노력한 결과 우리가 얻은 것은 과연
무엇인가?

곰곰이 따져 보아야 할 시점이다.

그리하여 지금부터라도 잃어버린 역사와 전통을 복원하여 우리의 정체성을
찾아 곧추 세우고 세계 질서의 변화를 예의 주시하면서 그 변화에 조응하는
방법론의 개발에 최선을 다할 일이다.

호랑이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살아난다고 하였다.

이러한 국가 대사는 국가의 방향성을 분명히 하여 국민을 설득하고 국력을
모으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하며 국제사회가 공감할 수 있는 국가 지도 이념을
창출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우리의 역사적 경험에 입각하여 모든 국가와 인류의 평화공존이라는
푯대를 세워야 한다.

그리하여 다른 나라를 한번도 침략하거나 약탈하지 않아서 전과가 없는
국가 경력이 지금까지는 "약소국의 비애"로 자조의 대상이 되었지만, 미래의
국제사회에서는 도덕적 입지를 강화하는 무기로 삼을 수도 있다는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