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식씨 구속영장] IMF 지원요청 늦어 환란초래..영장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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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권 남용
<>기아처리 지연=97년 7월 기아에 대한 정부불간섭 원칙을 천명하고서도
채권금융기관들이 화의에 동의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등 시종일관
개입함으로써 채권금융기관들이 조속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3개월여동안
처리가 지연되게 한 혐의다.
<>외환시장 개입=97년 10월 28일 한국은행 외환시장 개입을 중단토록
지시함으로써 3일동안 환율이 상승제한폭까지 폭등하는 등 외환시장이
마비되도록 직권을 남용, 11월 19일 재차 한은에 외환시장 개입중단을
지시하는 등 시장개입 및 중단지시를 반복함으로써 4회에 걸쳐 외환시장을
혼란에 빠뜨렸다.
<>관치금융 책임=97년 10월 고교동창인 주리원백화점 이석호회장으로부터
1백50억원을 대출받도록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담보가 부족한데도 윤증현
금융정책실장에게 대출이 실행될 수 있도록 해주라는 지시를 내려 조흥은행
에서 98억원의 신규대출및 예금 52억원에 대한 담보설정을 해지토록 했다.
또 97년 11월 사돈인 진도그룹을 도와주기 위해 윤증현실장에게 대출이 될
수 있도록 하라는 지시를 내려 서울은행 등 채권은행단이 1천60억원의
협조융자를 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
<> 직무유기
<>외환위기 수습기회 일실=97년 10월29일 한은으로부터 외환보유액 감소와
정부및 중앙은행차원에서 외자를 조달할 필요가 있다는 보고를 받고도
자신의 책임문제를 우려해 "우리 경제를 너무 비관적으로 보지 말라"고
가볍게 응답하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IMF 구제금융 요청 지연=11월 8일 김인호 경제수석과 대책을 논의한
결과 IMF 구제금융요청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에 이르렀음에도 개인적인
명예감정 때문에 자신의 부총리 재임중에는 구제금융 요청을 회피하겠다는
의도로 11월10일 대통령보고에서 "IMF.일본 등과 외자조달 협의" 부분을
삭제하는 등 축소보고.
11월14일에야 IMF와 자금조달 협의를 하겠다고 뒤늦게 보고함으로써 구제
금융 요청을 지연시켜 보유외환만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IMF 구제금융 요청 발표 차질=11월19일 IMF 구제금융 요청사실을 공식
발표하겠다고 구두보고를 받았음에도 자신이 부총리에서 경질됨으로써
구제금융발표를 스스로 거론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이임식을 할 때까지
임창열 후임부총리나 부하직원에게 이같은 발표계획을 전혀 알려주지 않았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8일자 ).
<>기아처리 지연=97년 7월 기아에 대한 정부불간섭 원칙을 천명하고서도
채권금융기관들이 화의에 동의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등 시종일관
개입함으로써 채권금융기관들이 조속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3개월여동안
처리가 지연되게 한 혐의다.
<>외환시장 개입=97년 10월 28일 한국은행 외환시장 개입을 중단토록
지시함으로써 3일동안 환율이 상승제한폭까지 폭등하는 등 외환시장이
마비되도록 직권을 남용, 11월 19일 재차 한은에 외환시장 개입중단을
지시하는 등 시장개입 및 중단지시를 반복함으로써 4회에 걸쳐 외환시장을
혼란에 빠뜨렸다.
<>관치금융 책임=97년 10월 고교동창인 주리원백화점 이석호회장으로부터
1백50억원을 대출받도록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담보가 부족한데도 윤증현
금융정책실장에게 대출이 실행될 수 있도록 해주라는 지시를 내려 조흥은행
에서 98억원의 신규대출및 예금 52억원에 대한 담보설정을 해지토록 했다.
또 97년 11월 사돈인 진도그룹을 도와주기 위해 윤증현실장에게 대출이 될
수 있도록 하라는 지시를 내려 서울은행 등 채권은행단이 1천60억원의
협조융자를 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
<> 직무유기
<>외환위기 수습기회 일실=97년 10월29일 한은으로부터 외환보유액 감소와
정부및 중앙은행차원에서 외자를 조달할 필요가 있다는 보고를 받고도
자신의 책임문제를 우려해 "우리 경제를 너무 비관적으로 보지 말라"고
가볍게 응답하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IMF 구제금융 요청 지연=11월 8일 김인호 경제수석과 대책을 논의한
결과 IMF 구제금융요청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에 이르렀음에도 개인적인
명예감정 때문에 자신의 부총리 재임중에는 구제금융 요청을 회피하겠다는
의도로 11월10일 대통령보고에서 "IMF.일본 등과 외자조달 협의" 부분을
삭제하는 등 축소보고.
11월14일에야 IMF와 자금조달 협의를 하겠다고 뒤늦게 보고함으로써 구제
금융 요청을 지연시켜 보유외환만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IMF 구제금융 요청 발표 차질=11월19일 IMF 구제금융 요청사실을 공식
발표하겠다고 구두보고를 받았음에도 자신이 부총리에서 경질됨으로써
구제금융발표를 스스로 거론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이임식을 할 때까지
임창열 후임부총리나 부하직원에게 이같은 발표계획을 전혀 알려주지 않았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