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금융개혁을 경제정책의 최우선과제로 선택한 데서 구조조정을
가속화하겠다는 의지를 읽을수 있다.

우리경제가 제2의 외환위기를 맞을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도 엿보인다.

한국개발연구원이 보고한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런 위기의식이
나타난다.

최근 인도네시아사태로 아시아금융시장이 다시 요동치고 있는 것과도
무관치 않다.

실제로 외국인투자자들은 한국증시와 채권시장에서 떠나가고 있다.

구조조정이 더이상 지연되면 대외신인도가 더 떨어지게 될게 분명하다.

더구나 외국인들은 한국정부가 말로만 개혁을 떠들뿐 실제 개혁작업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는 실정이다.

구조조정을 강조한 것은 국민들 사이에 위기의식이 희석되고 있다는
사실과도 연관이 있다.

"일반 국민들에게 심각한 상황을 인식시키고 단기적인 고통감내가 필요
하다는 점을 알리기 위한 것"(이진순 KDI원장)이기도 하다.

분위기가 느슨해지면서 정치와 노사관계가 불안해지고 금융기관부실이
더 커졌다는게 KDI의 진단이다.

게다가 대기업의 기회주의적 행태가 두드러지고 이익집단저항도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서 정부는 구조조정과 실업대책의 우선순위를 놓고 이중적인
태도를 보여 혼선을 빚게 했다.

시급한 구조조정을 강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실업대책이 정부의 최우선
과제"라고 하는 등 오락가락했다.

이 과정에서 기업들은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어정쩡한 태도를 보여 왔다.

최근 정부가 구조조정이 우선이라는 점을 밝히긴 했으나 재계에서는 아직도
본격적인 고용조정은 머뭇거리고 있는 상태다.

이번 경제대책조정회의를 계기로 실업보다는 구조조정이 우선이라는 점이
명확해졌다.

정부는 실질적인 정리해고가 이뤄질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고 임금하락과
3D업종 취업 등을 유도해야 한다는 KDI의 견해를 수용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금융구조조정과 기업구조조정은 병행추진되지만 정부는 금융구조조정에
주력하기로 가닥이 잡혔다.

기업에 자금을 수혈하는 혈맥인 금융시스템안정이 시급한 만큼 정부가
보다 직접적으로 개입하겠다는 것이다.

기업구조조정은 금융기관주도로 진행하되 철저한 시장논리를 적용한다는
원칙이 재확인됐다.

최근 정치권에서는 6.4 지방자치단체장선거를 앞두고 현안들을 덮어두고자
하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기아나 동아건설 처리 등을 지방선거이후로 미루려는 압력이 있다는게
금융계의 관측이다.

그러나 정부는 부실기업에 대한 협조융자는 중단돼야 한다는 점을 다시
강조하고, 부채비율이 과도한 기업에 대해서는 충당금을 더많이 쌓도록 하는
구체적인 방안까지 제시했다.

그러나 금융기관 부실채권과 예금자보호 자본금확충 등 금융구조조정에
필요한 구체적인 재원조달방안이 아직 마련돼 있지 않아 논란이 예상된다.

< 김성택 기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