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두 돌 정도 지났을 때였나, 내가 요리할 때 곧잘 옆에서 같이 하곤 하였다. 일종의 조기교육(?)이랄까, 달걀을 휘적휘적 저어 주기도 하고 짓이기는지 모르겠지만 나름 양송이도 썰어(?) 주기도 했었다. 이제 만 4살이 조금 넘은 아이는 조금 더 능숙한 나의 주방보조가 되고 있다. 아이는 나를 닮아 돈가스를 좋아한다. 뭐 내 입으로 이야기하기에 민망하지만, 확실히 이야기하자면 ‘아빠가 만든 돈가스’를 좋아한다. 본인이 옆에서 보조한…‘오늘은 어떤 돈가스를 먹고 싶어?’라고 물으면 구체적으로 나에게 주문도 한다. 얇은 거! (독일식 슈니첼을 의미하는 거겠지…), 두꺼운 거! (일식 돈가스를 의미하는 거겠지…) 라고 스타일을 이야기해 준다. 가끔은, 아니 조금 자주 ‘아무거나’도 이야기한다. 그러면 난 진지하게 이야기해 준다. ‘나중에 커서 그러면 남자 친구가 힘들어해’. 그리고 이제 식사를 할 때면 다른 추가 주문이 들어온다. ‘아빠! 음악도 틀어야지~’ ‘그럼 어떤 음악을 틀까?’ ‘아빠가 일할 때 하는 음악 틀어줘!’내가 일할 때 하는 음악이라면 분명 클래식 음악일 것이다. 문득 내가 언제부터 클래식 음악을 접하기 시작하였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 아이와 음악을 잔잔히 틀어놓고 우리가 만든 돈가스를 먹는 순간 문득 생각이 났다. 기억 어딘가에 숨어있던 정말 어렸을 적 기억이다. 어린 나를 설레게 했던 행복한 기억의 그림, 어느 날씨 좋던 날에 아빠와 엄마와 손잡고 경양식집에 나들이를 가는 내 모습이다.지금은 많이 사라진 경양식집. 경양식집에 가야 접할 수 있던 돈가스는 어렸을 때 우리 집의
옛날옛적에, 잔혹동화를 쓰는 한 작가가 있었다. 그는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쓰는 이야기에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잔인한 살인사건이 연달아 발생했다. 사건을 추적하던 형사들은 엽기적인 살인 방식이 작가의 이야기를 그대로 닮아음을 깨닫고 그를 체포한다. 작가는 자신이 범인이 아니며, 그런 살인사건이 발생했는지도 몰랐다고 결백을 호소했다.이때 우리는 작가를 자유롭게 풀어주어야 할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조사 과정에서 살인사건의 진범이 작가의 친형이며, 그 형이 작가의 이야기에 감명받아 살인을 저질렀음이 밝혀졌다면 어떨까. 그뿐만 아니라 작가의 재능을 계발하기 위해 부모가 형을 몇 년 동안 매일 밤 고문했고 그 과정에서 형의 정신이 이상해졌다면. 작가가 형의 비명 소리를 매일 들으며 인간과 세계의 어두운 면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고, 그처럼 잔혹동화를 쓰게 되었다면. 고문당하는 형의 존재를 깨달았을 때 그것조차 자신의 이야기로 삼았다면. 이때 우리는 작가가 계속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쓰도록 자유롭게 놓아주어야 할까?다시 그런데, 이들이 살아가는 국가가 전체주의 독재 경찰국가인데다 형사들은 범죄 예방 효과를 노리며 거짓 자백을 종용하고 폭력도 서슴지 않았다면. 작가의 이야기 중에 소녀가 나쁜 아버지에게 학대당하는 이야기, 아이들이 미래에 희망이 없다고 느끼고 죽음을 택하는 이야기, 누군가 이유도 모르는 채 감옥에 갇혀 죽는 이야기들이 있고 이것이 무언가를 암시하고 있다고 모두에게 느끼게 한다면. 작가가 고문당하는 형의 존재를 깨달았을 때 부모에게 저항하고 형을 구출했다면.이때 우리는 작가
뮤지컬 <베르테르>가 25주년 공연으로 돌아왔다. 2000년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시작된 <베르테르>(당시 제목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었다)는 극단 갖가지 故심상태 대표의 의지로 시작된 작품이었다. 당시 심상태 대표는 '문학성’에 기대는 진중한 뮤지컬의 모델을 만들고자 했다. 음악 역시 독일 가곡이 연상되는 연세대 정민선 교수의 넘버를 실내악으로 만들어 기존 뮤지컬에서 쉽게 들을 수 없는 스타일로 탄생됐다. 고선웅 극본, 조광화 연출, 구소영 음악감독 체제도 신선했다.하지만 초연도, 연이은 2001, 2002년 공연도 흥행에는 실패했다. 공연을 살린 것은 '베사모(베르테르를 사랑하는 모임)’였다. 자발적으로 결집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팬들은 십시일반 제작비를 충당해 2003~2004년 공연을 이어갔다. 2010년부터는 CJ EnM이 공동제작으로 들어오면서 현재와 같은 체제가 만들어졌다.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김민정 연출에 의해 새롭게 정리되었던 2010년, 2012년 버전 이후 2013년부터 <베르테르>라는 제목으로 리뉴얼되면서 다시 조광화 연출이 합류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해바라기는 <베르테르>를 상징하는 꽃이 되었다.자기 파괴적인 사랑어찌 보면 이러한 <베르테르>의 공연사는 기적에 가깝다. 도대체 <베르테르>가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는 요소는 무엇이란 말인가. <베르테르>에는 뮤지컬 특유의 화려한 쇼도 없고, 말초적인 사건도 없다. 유부녀를 사이에 두고 두 남자가 이성과 감성, 질서와 공감으로 부딪히는 삼각관계는 크게 특별하지 않으며, 심지어 원작에 이미 권총 자살하는 베르테르의 결말이 스포되어 있기까지 하다. 공연의 템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