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 화의법이 기업구조조정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10일 법조계와 업계에 따르면 법정관리와 화의의 기준이 모호, 법원마다
엇갈린 결정이 나오는가 하면 불필요한 채권자협의회 구성문제로 기업처리가
늦어지는 등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이처럼 기준적용이 모호하자 기업들도 일단 화의를 신청한 후 법원이
기각결정을 내리면 다시 법정관리로 변경신청하는 등 시간적 경제적 손실이
심각하다.

여기다 개정법이 의무적으로 구성토록 한 채권자협의회에 금융기관이
참가를 거부, 부실기업처리가 더욱 늦어지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부실기업의 신속한 처리를 위해 개정된 화의법이 시행된지 3개월이 넘도록
표류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화의법의 보완이나 대법원 시행규칙 개정을 통해 한계기업의
처리방향에 대한 명확한 기준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법조계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 형식적인 채권자협의회 구성

개정법은 화의사건의 법적처리시한을 3개월이내로 제한했다.

화의신청의 남용과 이로 인한 한계기업의 처리지연을 막기 위해서다.

그러나 기업의 회생가능성을 조사하는데 사용돼야 할 시간이 채권자협의회
구성문제로 허비되고 있다.

대표채권자 선정문제로 1개월을 허송세월한 쌍방울이 대표적인 경우.

이 기업은 주거래 은행과 금융기관들이 대표채권자 자리를 서로 떠넘기는
바람에 신청된지 6개월이 지나도록 결정이 내려지지 않고 있다.

서울지법의 경우 지난 3월 화의를 신청한 H통신은 아직 협의회 구성조차
못한 상태며 C금속 T금속은 법원이 대표채권자를 강제지정해 간신히 협의회
구성을 마쳤다.

기업처리과정에서 채권자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기 위해 신설된
채권자협의회가 금융기관의 참가 거부로 유명무실해지고 있는 것이다.

은행들이 대표채권자 맡기를 꺼리는 것은 보전관리인 추천 등 많은
행정업무를 떠안는 등 업무가 더 생기기 때문이다.

이미 각 금융기관이 가지고 있는 화의기업의 숫자가 평균 50여개가 넘어
업무가 포화상태에 이른 것도 한 요인이다.

서울지법 서경환 판사는 "채권자협의회를 반드시 구성토록 한 화의법
자체가 문제"라며 "중소기업의 경우 필요하지도 않은 채권자협의회 구성
때문에 법적 처리시한에 쫓기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 모호한 판단기준

화의법이 정한 화의기각기준이 지나치게 애매모호해 법원의 자의적인
판단을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

화의법이 정한 기각조건은 "채권자 등 이해관계인 수가 많거나" 또는
"채무액수가 많은" 경우.

그러나 법원마다 이 규정에 대한 해석이 달라 신청기업의 운명이 엇갈리고
있다.

돈빌려준 채권단이 화의를 해주겠다는데도 은행여신 2천5백억원을
화의개시의 상한선으로 정해 놓은 것이 대표적인 문제다.

서울지법의 경우 이 상한선에 미달하는 기업에 대해 전체 부재액수가
많다는 이유로 화의신청을 기각하는 등 결정의 일관성을 잃고 있다는
지적이다.

종금사 등 제2금융권은 담보권을 확보하고 있는 은행은 화의의 영향을
받지 않는데도 은행여신을 기준으로 기각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수원과 대구지법의 경우 "외자도입"과 "지역경제의 특수성"을 내세워
이 기준을 초과한 기업에 대해 과감히 개시결정을 내리고 있어 기업을 더욱
헷갈리게 하고 있다.

한 로펌의 변호사는 "도산관련법의 통합을 통해 개별기업에 가장 적절한
회생방안을 적용토록 하는 한편 기업들이 납득할 만한 판단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선결 과제"라고 말했다.

< 이심기 sglee@ >

[[ 화의기업 처리현황 ]]

(단위 : 원)

< 뉴코아 >

<>법원 : 서울
<>결정내용 : 기각
<>금융권여신 : 7천4백억
<>금융기관동의여부 : 대다수 동의
<>업종 : 유통
<>외자유치계획 : 없음

< 만도기계 >

<>법원 : 수원
<>결정내용 : 개시
<>금융권여신 : 1조7천6백억
<>금융기관동의여부 : 전부 동의
<>업종 : 제조
<>외자유치계획 : 미국 로스차일드사 10억달러

< 태일정밀 >

<>법원 : 수원
<>결정내용 : 개시
<>금융권여신 : 8천5백82억
<>금융기관동의여부 : 대다수 동의
<>업종 : 제조
<>외자유치계획 : 대만 웨일즈그룹 등 3억달러

< 수산중공업 >

<>법원 : 수원
<>결정내용 : 취하 후 법정관리
<>금융권여신 : 7천5백5억
<>금융기관동의여부 : 다수 동의
<>업종 : 제조
<>외자유치계획 : 없음

< 미도파 >

<>법원 : 서울
<>결정내용 : 기각
<>금융권여신 : 6천3백억
<>금융기관동의여부 : 대다수 동의
<>업종 : 유통
<>외자유치계획 : 독일 웨스트머천트사 1억5천만달러

< 청구 >

<>법원 : 대구
<>결정내용 : 기각
<>금융권여신 : 6천7백72억
<>금융기관동의여부 : 다수 동의
<>업종 : 건설
<>외자유치계획 : 없음

< 보성 >

<>법원 : 대구
<>결정내용 : 개시
<>금융권여신 : 5천2백90억
<>금융기관동의여부 : 대다수 동의
<>업종 : 건설
<>외자유치계획 : 없음

* 은행여신 2천5백억원 이상, 미도파는 2천4백억원.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