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21조원의 운명 .. 김형수 <산업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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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수 < 산업2부장 odin@ >
한국종합전시장(KOEX).
한국경제가 잘나가던 시절 각종 전시회의 메카였던 이곳에 지난 주말 좀
색다른 "박람회"가 열렸다.
중소기업들이 가동하지 않는 중고기계의 매매를 알선해주는 쉽게 말해서
"중고기계복덕방"이 열린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체제에 들어선 이후 민간차원의 "아나바다"운동이
유행이니까 중소기업들이 주체가 된 또다른 형태의 아껴쓰기정도를 연상하기
쉽지만 내막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다.
고가에 수입해온 정밀기계에서부터 범용공작기계에 이르기까지 전시된
1천여점의 설비는 IMF한파를 누구보다 강하게 느끼고 있는 중소기업들의
재산이다.
수백억원을 호가하는 이 설비들은 그러나 나라 전체의 중소제조업체가
갖고있는 소위 유휴설비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정부측 통계는 이런 운명에 처한 설비가 21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범위를 건설 서비스 등으로 확대하면 무려 40조원 가까이 된다는 얘기다.
그많은 설비중 이번 박람회에 나온 것은 기껏 수백억원규모밖에 되지
않는다.
어차피 생산에 활용되지 않는 설비인데 왜 이처럼 좋은 장터에 나오지
않은 게 많은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박람회에 참여한 한 업체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면 이유는 간단하다.
소문 때문이다.
비교적 건실한 업체가 일시적인 유동성부족으로 "저 업체는 어렵다더라"는
소문이 업계에 퍼지면 쉽게 무너져버렸던 몇가지 사례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루머가 무섭다는 점은 익히 알려져있다.
이 업체 관계자는 고가의 스위스제 설비를 들여왔으나 지난 1년여간 이것이
거의 무용지물이었다고 한다.
박람회 소식을 듣고 마침 좋은 기회다 싶어 내놓으려 했으나 소문이 무서워
매각대상에 올리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몇가지 값싼 범용설비를 내놓고 이 설비는 수출해버리겠다고 한다.
수출실적도 올리고 소문도 막아보자는 계산이다.
나라전체로 볼때 수출은 늘겠지만 생산은 당분간 어려워지는 것이다.
게다가 외화를 빌려 사들여왔기 때문에 높은 금리에 환율부담까지
계산한다면 이 업체의 선택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설비는 가동을 중단하면 녹슬게 마련이다.
그러다 부도라도 나면 극히 드문 일이라고는 하지만 가동 중단된 고가설비의
핵심부품을 도난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여러가지 이유로 국내에서 처분할 수 없는 설비는 어쩔 수 없이 수출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1미크로이하의 정밀도가 필요한 정밀기계의 경우 수출은 피하고
싶은 선택이라는게 업체들의 설명이다.
운반되는 과정에서 정밀도에 손상을 입을 염려가 있어 제값받고 팔기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소문이 두려워 수출을 선택하는 업체가 부지기수라고 한다.
인천항을 통해 줄줄이 수출되는 많은 장비들이 이같은 운명에 처한 우리
중소기업들의 재산이다.
사회주의 옛소련의 와해와 그이후 나타난 각종 설비및 기술의 유출을
되돌아 봐야한다.
블라디보스토크 모스크바에 몰려갔던 우리 기업인들이라면 그때의 모습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것이다.
국가산업기반의 와해를 막기 위해서 아니 소박하게 중소기업들의
"아나바다운동"을 위해서라도 소문의 피해를 보지않고 언제라도 필요할때
이들이 중고설비를 처분할 수 있는 상설전시장을 세워야할 때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11일자 ).
한국종합전시장(KOEX).
한국경제가 잘나가던 시절 각종 전시회의 메카였던 이곳에 지난 주말 좀
색다른 "박람회"가 열렸다.
중소기업들이 가동하지 않는 중고기계의 매매를 알선해주는 쉽게 말해서
"중고기계복덕방"이 열린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체제에 들어선 이후 민간차원의 "아나바다"운동이
유행이니까 중소기업들이 주체가 된 또다른 형태의 아껴쓰기정도를 연상하기
쉽지만 내막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다.
고가에 수입해온 정밀기계에서부터 범용공작기계에 이르기까지 전시된
1천여점의 설비는 IMF한파를 누구보다 강하게 느끼고 있는 중소기업들의
재산이다.
수백억원을 호가하는 이 설비들은 그러나 나라 전체의 중소제조업체가
갖고있는 소위 유휴설비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정부측 통계는 이런 운명에 처한 설비가 21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범위를 건설 서비스 등으로 확대하면 무려 40조원 가까이 된다는 얘기다.
그많은 설비중 이번 박람회에 나온 것은 기껏 수백억원규모밖에 되지
않는다.
어차피 생산에 활용되지 않는 설비인데 왜 이처럼 좋은 장터에 나오지
않은 게 많은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박람회에 참여한 한 업체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면 이유는 간단하다.
소문 때문이다.
비교적 건실한 업체가 일시적인 유동성부족으로 "저 업체는 어렵다더라"는
소문이 업계에 퍼지면 쉽게 무너져버렸던 몇가지 사례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루머가 무섭다는 점은 익히 알려져있다.
이 업체 관계자는 고가의 스위스제 설비를 들여왔으나 지난 1년여간 이것이
거의 무용지물이었다고 한다.
박람회 소식을 듣고 마침 좋은 기회다 싶어 내놓으려 했으나 소문이 무서워
매각대상에 올리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몇가지 값싼 범용설비를 내놓고 이 설비는 수출해버리겠다고 한다.
수출실적도 올리고 소문도 막아보자는 계산이다.
나라전체로 볼때 수출은 늘겠지만 생산은 당분간 어려워지는 것이다.
게다가 외화를 빌려 사들여왔기 때문에 높은 금리에 환율부담까지
계산한다면 이 업체의 선택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설비는 가동을 중단하면 녹슬게 마련이다.
그러다 부도라도 나면 극히 드문 일이라고는 하지만 가동 중단된 고가설비의
핵심부품을 도난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여러가지 이유로 국내에서 처분할 수 없는 설비는 어쩔 수 없이 수출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1미크로이하의 정밀도가 필요한 정밀기계의 경우 수출은 피하고
싶은 선택이라는게 업체들의 설명이다.
운반되는 과정에서 정밀도에 손상을 입을 염려가 있어 제값받고 팔기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소문이 두려워 수출을 선택하는 업체가 부지기수라고 한다.
인천항을 통해 줄줄이 수출되는 많은 장비들이 이같은 운명에 처한 우리
중소기업들의 재산이다.
사회주의 옛소련의 와해와 그이후 나타난 각종 설비및 기술의 유출을
되돌아 봐야한다.
블라디보스토크 모스크바에 몰려갔던 우리 기업인들이라면 그때의 모습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것이다.
국가산업기반의 와해를 막기 위해서 아니 소박하게 중소기업들의
"아나바다운동"을 위해서라도 소문의 피해를 보지않고 언제라도 필요할때
이들이 중고설비를 처분할 수 있는 상설전시장을 세워야할 때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