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은행별로 부실기업 판정위원회가 구성된데 이어 은행공동의 판정기준
까지 만들어졌다고 한다.

부실 대기업을 골라내기 위한 이 위원회와는 별도로 부실 중소기업을
판별할 중소기업 특별대책반도 운영될 것이라고 한다.

지난 10일 김대중 대통령이 국민과의 대화에서 밝혔던대로 이달말까지
살릴 기업과 도태시킬 기업을 가리기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총론적 시각에서 보면 이같은 은행권의 움직임은 하등 문제될 게 없다.

도태시켜야할 부실기업을 하루빨리 정리해야 경제가 정상화될 수 있다는
주장도 옳다.

그러나 부실기업 판정작업은 실제 진행과정에서 자칫 엄청난 부작용을
수반할 수도 있다.

기업관련 악성루머를 증폭시켜 건전한 기업을 도산으로 몰고갈 우려가
없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어떤 기업이 어떻다는 소문만 돌아도 종합금융사 등 제2금융권에서 대거
교환을 돌리는게 정형화된 금융풍토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바로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이달말까지라는 시한을 설정하고 서둘러
단행하려는 부실기업 판정은 현실적으로 문제가 없지 않다는 느낌을 갖는다.

엄청나게 많은 기업을 대상으로 해야할 판정작업을 1개월내에 매듭짓는
것이 물리적으로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우선 협조융자기업과 여신관리 규정상의 부실징후기업들만을 대상으로
한다고 하더라도 그 수가 은행마다 40~50개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작업량은 엄청날 수밖에 없다.

회생가능한 기업인지 불가능한 기업인지 판정결과가 은행마다 다르게
나올 수 있는 등 혼란이 빚어져 은행간 조율이 필요한 경우도 적잖을 것이고
보면 특히 그렇다.

현시점에서 은행의 부실기업 판정작업은 부동산및 계열기업처분 외자도입
등으로 짜여진 대기업들의 자구계획 실천에는 물론 통상적인 경영활동에도
걸림돌이 될 것이란 재계의 재적은 경청할만하다.

청산대상이 될지도 모르는 기업과의 거래나 투자에 소극적인 것은
당연하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있다.

현재의 금융시장상황이 지극히 나쁘다는 점을 감안할때 해당기업 입장에서
보면 부실판정작업에 관련된 악영향은 자칫 치명적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이 작업을 하지말라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부실판정은 따지고보면 은행고유의 대출심사 및 신용평가작업과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를 하지말라고 얘기하는 것은 한마디로 난센스이기도 하다.

만약 은행들이 소리 소문없이 작업을 자율적으로 진행해 부실을 가려내고
그것을 정리했다면 재계가 불필요한 긴장감을 느낄 이유도 없었을 것이고
증시 등에 미치는 영향도 극소화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못한데는 우리 금융구조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지만, 어쨌든
작업과정에서 건전한 기업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판정기준에 객관성이 있어야 할 것은 물론이지만, 무엇보다도 악성루머를
증폭시키는 부작용이 없도록 하는데 우선 신경을 써야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1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