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스스로 금융구조개혁을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라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금융당국은 부실금융기관을 과감히 정리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으나 실제
움직임은 딴판이다.

정부는 12일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을 통해 거평그룹 계열인 새한종합금융을
인수토록 결정했다.

새한종금은 올해 1백억원이 넘는 적자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거평은 새한종금이 종금사 생존기준인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6%를 맞추기 위해서는 대규모증자를 해야 하는 부담 때문에 내놓게 됐다.

산은 관계자는 "정부가 새한종금을 인수하라고 급하게 요청하는 바람에
자산과 부채를 실사할 틈도 없이 일단 무상으로 인수키로 했다"고 설명했다.

인수대상주식은 거평그룹 계열이 갖고 있는 2백75만주, 37.7%다.

산은은 새한종금을 인수함에 따라 새한종금이 1백% 지분을 갖고 있는
강남상호신용금고, 5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새한렌탈도 인수하게 된다.

산은은 작년 1월 자회사를 정리하라는 정부 지시에 따라 새한종금을 거평에
팔았다.

1년을 갓 넘겨 다시 사들인 꼴이다.

금융감독위원회는 지금도 은행들에 부실한 자회사를 과감히 팔라고 다그치고
있다.

금감위관계자는 "새한종금파산에 따른 금융경색을 막고 7천억원정도에
달하는 산은의 새한종금채권을 보전하기 위해 인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산은은 새한종금을 정상화시켜 다시 팔 계획이다.

하지만 부실금융기관을 과감히 퇴출시키겠다고 외쳐온 금융당국은 호응을
얻기 어렵게 됐다.

정부는 작년말 부실해진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에 각각 1조5천억원씩을
퍼부어 국제통화기금(IMF) 등 외국금융기관에서 "퇴출시켜야 할 금융기관을
끌고간다"는 비난을 사온 터였다.

정부출자는 엎지러진 물.

하지만 그 이후 관리도 문제였다.

외국인들은 여전히 2개은행이 하고 있는 자구노력이 미흡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제일은행은 인원을 1천8백40명 줄여 6천명으로 감축했고 국내외 점포
50여개를 통폐합했다.

서울은행도 1천5백여명을 감축해 5천9백여명으로 줄이고 50여개 국내외
점포를 정리했다.

외국금융계 관계자는 "정부는 대형금융기관 파산에 따른 금융대란을 막기
위해 직접 나설수 있으나 그 이후 관리능력이 의심받고 있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선진국 같으면 인원이나 점포의 절반이상을 정리하고 거액
예금자에 대해서도 적잖은 손실을 감수토록 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2개은행의 예금인출소동을 우려해 2000년까지 원리금을 보장하겠다고
발표했다.

게다가 연 20%를 훨씬 넘는 고금리예금상품을 팔수 있도록 허용, 부실금융
기관에 도덕적해이(모럴해저드)를 조장했다는게 외국금융계 시각이다.

2개 은행 주가가 2천-2천5백원으로 떨어짐에 따라 액면가 5천원에 출자한
정부는 1조5천억-1조8천억원을 까먹은 상태다(평가손).

앞으로 주가가 더 떨어지거나 부실이 늘어나면 해외매각이 어려울지도
모른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이덕훈 박사는 "한국정부와 국회가 부실금융기관을
처리할 능력이 없는 것으로 의심하는 외국인이 많다"고 지적했다.

세계적인 신용평가회사인 미국 무디스사가 19개 국내은행의 신용등급을
11일 일제히 떨어뜨린 것도 바로 이런 의심이 쌓인 탓이다.

< 고광철 기자 gwang@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1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