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주식시장은 문을 열기 전부터 "부실기업살생부"에 대한 공포감이
팽배했다.

정부가 조기정리를 단행할 부실징후 기업과 금융기관의 명단이 증권가에
떠돌고 있다는 소문이 투자자들의 마음을 얼어붙게 했다.

일반투자자들은 저마다 살생부에 오를 기업들을 헤아리느라 여념이 없었고
둘 셋이 모여 이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이에따라 이날 주식시장은 개장직후 무조건 팔고보자는 투매양상으로
출발했다.

하한가 종목이 무더기로 쏟아지면서 종합주가지수 350이 단숨에 무너졌다.

정막한 장내에는 한숨만이 간간히 흘러나왔고 증권사 영업직원들도잠시
일손을 놓은 채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증권사 영업담당자들은 지난해 12월 환란 당시에 비하면 이번 객장
분위기는 그래도 차분한 편이라고 평가했다.

지난 12월 주가하락으로 인해 깡통계좌가 속출하고 일반투자자가 신용으로
빌린 돈을 갚지못해 증권사가 고객들의 재산을 가압류하는 등과 같은 험악한
꼴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난 12월에는 고객들이 주식투자를 위해 증권사로부터 빌린 돈인
신용융자잔고가 2조원을 넘었으나 지금은 5천억원을 밑돈다.

고객예탁금도 절반수준이다.

그만큼 개인들이 이번 폭락사태를 예견이라도 한듯 일찌감치 적은
돈이나마 싸들고 증시를 떠났다는 것이다.

<>.증권사 직원들은 의외로 담담한 편이다.

주가가 더 떨어질 것이라고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는 사람들이 많다.

요즘같은 구조조정기에는 불확실한 주식시장을 떠나 안전한 곳으로 자금을
이동시키는 편이 상책이라는 자조섞인 충고도 내놓았다.

<>.요즘 객장에는 실직한 40,50대 남성들이 눈에 많이 띈다.

한 40대 실직자는 "용돈이라도 벌어볼까해서 주식투자에 나섰으나 그나마
남은 돈마저 다 날렸다"며 전광판을 애써 외면하려했다.

그러면서도 미련이 남은 듯 쉽게 객장을 떠나지 못하며 머뭇거렸다.

다른 일반투자자는 "정리해야하는 부실기업들은 가능한 한 빨리 다
정리하고 새롭게 출발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송태형 기자 toughlb@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1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