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가가 연중 최저치로 폭락하는 등 제2 환란에 대한 위기감이 날로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재계 28위인 거평그룹의 도산사태가 발생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어차피 회생가능성이 없다면 어쩔 수 없다고 본다.

하지만 산업은행이 지난 12일 오후 이사회를 열고 거평그룹의 새한종금
보유지분을 전격적으로 인수하기로 한 것은 여러가지로 부당하다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산업은행의 새한종금 인수는 우리경제의 당면과제인 금융및 기업의
구조조정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일이다.

금융시장 안정과 대외신인도 유지를 위해 정부가 나서서 주선했다고
해명하지만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불과 몇달전에 두차례에 걸쳐 14개의 종금사를 폐쇄할 때도 똑같은 명분을
내세웠는데 누구는 살려주고 누구는 죽이기냐는 불만이 안생긴다면 이상한
일이다.

더 나아가 지난 2월말 종금사 경영평가때 문제없다고 판정받고 불과
석달도 안돼 자력회생이 어려워 산업은행이 인수한다니 정부가 추진중인
금융개혁에 대한 신뢰도가 크게 떨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그리고 금융혼란이 두려워 부실종금사를 살린다면 은행이나 투신사는
어떻게 구조조정한다는 말인가.

금융당국은 50여개의 부실금융기관을 과감하게 폐쇄한 태국의 구조조정이
높이 평가된다는 사실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또한가지 지적할 것은 새한종금을 인수하는 과정에 대해 특혜시비가 있을
소지가 많다는 점이다.

얼마 전부터 산업은행이 10억달러에 달하는 새한종금의 외화자산을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했고 최근에는 7천억원에 이르는 산업은행 채권의
일부를 출자전환하는 방안도 추진되기는 했다.

하지만 이사회 당일 불과 몇시간전까지 안건에 올라 있지도 않던 새한종금
인수건을 금융당국의 지시로 전격적으로 결정한 것은 상식밖의 일처리다.

이렇게 서두르다 보니 새한종금의 자산과 부채에 대한 실사를 실시할
시간적 여유가 없어 우선 인수하고 나중에 정산하기로 하는 무리가 뒤따랐다.

비록 무상인수라고 하지만 실사결과 얼마나 많은 손해를 볼지 모르지
않는가.

산업은행이 새한종금에게서 받을 빚이 많은데다, 새한종금의 자산이
부채보다 많아 큰 걱정없다는 얘기도 거평그룹의 도산으로 거액의 부실채권
발생이 불가피한 마당에 눈감고 아웅하는 식의 변명에 불과하다.

가뜩이나 무디스사의 신용등급 인하로 타격을 받은 산업은행이 이번 일로
다시 한번 신용추락을 겪게되지 않을까 하는 점도 걱정이다.

1백% 정부출자기관인 산업은행의 신용추락은 국가신용도에도 적지 않은
악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1월 거평그룹으로 넘어갈 때도 특혜설에 휩싸였던 새한종금이
또다시 특혜시비속에 산업은행으로 떠넘겨져서는 안된다.

대외신인도 유지 및 성공적인 구조조정을 위해서도 산업은행의 새한종금
인수는 즉각 재고돼야 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