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경제개혁을 제대로 하려면 관료들을 비행기에 태워 국외로
추방해야 한다"는 루디거 돈부시 MIT대학교수의 신랄한 지적은 최근
국내외의 관심거리가 되고 있는 한국 금융기관 및 기업의 구조조정에 대한
외국전문가들의 일반적 시각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그냥 들어넘길 일이
아니다.

특히 이같은 견해가 앨 고어 미국부통령을 비롯한 미.일.중국의 거물급
인사들이 참석한 미국경제전략연구소(ESI) 토론회에서 세계적 석학에 의해
제기됐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지금 몸살을 앓고 있는
경제개혁에 가장 큰 걸림돌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지적했다고 할 수 있다.

돈부시 교수는 과거 멕시코와는 달리 한국 등 일부 아시아 국가들은
개혁이 지연돼 제2,제3의 위기에 노출돼 있다면서 관료사회의 개혁없이는
경제개혁이 성공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돈부시 교수뿐만 아니라 여러 토론참가자들이 한국정부의 위기극복노력에
회의를 표시하면서 정부와 민간의 경제활동영역을 명확히 구분하는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이같은 발언들이 미국이 추구하는 글로벌리즘과 무한경쟁,
첨단기술에 바탕한 미국경제의 지속적 우위확보라는 전략과 무관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또 한국의 경제현실에서 정부와 민간의 역할을 두부모 자르듯 명확하게
구분지을 수 없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러나 최근 한국의 경제개혁을 지켜보는 외국인들의 시각이 점차
냉담해지고 있는데는 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본다.

외국자본이 문앞에까지 왔다가 발길을 돌리는 것도, 외국인들이 증권시장을
속속 빠져나가는 것도, 외국의 신용평가기관이 국내 19개은행의 신용등급을
일제히 하향 조정한 것도 우리정부의 "약속따로 행동따로"에 실망한 결과가
아니겠는가 자문해보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약속한 개혁프로그램의 내용 자체에도 "너무 안이하다"는 비판이
있는 마당에 그마저도 전혀 실천이 따라주지 못하고 반년 가까이 말잔치만
벌이고 있으니 어찌 신뢰가 쌓일 수 있겠는가.

이제 한마디로 실천없이는 국제적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실천에 관한 한 우리정부는 한국보다 두달 먼저 IMF체제에 들어간
태국에서 배워야 할 점이 많다.

추안 리크파이 총리의 새 정부가 부실금융기관에 대해 취한 신속하고도
과감한 조치에 국제금융계는 한국에 대한 냉담한 반응과는 대조적으로
"놀랍고 믿음이 간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아무리 우리의 관료사회가 외국인들의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해도 결국
현재의 난국을 앞장서 헤치고 구조조정을 추진할 주체는 정부및 관료들이다.

지금처럼 이들 관료사회가 복지부동으로 일관하거나 정책의 "한건주의"의
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우리는 세계가 우려하는대로 제2, 제3의 위기를
맞을 수 밖에 없다.

민간부문의 개혁을 선도할 수 있는 공공부문의 개혁이 시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