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열린 전경련회장단회의가 "부실기업정리에 대한 정부의 기준이
나오면 적극 동참할 것"이라고 재계입장을 밝힌 것은 보기에 따라서는
상당히 의외의 감조차 없지 않다.

회장단회의를 앞두고 재계의 상당한 반발이 표면화될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었던만큼 더욱 그런 느낌이 있다.

전경련의 "부실정리 동참"다짐은 어려운 시기에 구조조정을 둘러싸고
정부와 재계간에 불협화음이 일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지 않으려는 배려를
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 어떤 형태로든 부실기업정리를 통한 구조조정은 불가피한 현안과제이기
때문에 명분상 재계가 거부반응을 공식적으로 나타내기 어려운 측면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재계의 이같은 공식적인 반응에 관계없이 부실기업판정작업과 관련,
또한차례 금융시장에 회오리바람이 일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우려할
일이다.

증시주변에는 벌써부터 30대 그룹중 11개가 정리대상인 C그룹에
포함됐다는 등의 루머가 파다하고, 그 때문에 당해업체 주가가 급락세를
보이는 양상이기도 하다.

일부 은행들마저 벌써부터 루머대상이 되고 있는 업체에 대해서는 자금
회수에 나서고 있어 어려움을 더하게 한다는 불평이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그 회사는 수출 등 정상적인 경영활동도 지장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부실기업정리의 당위성을 인정하지만, 그로인한 쇼크를 극소화할 배려가
시급하다고 볼 수 있다.

되는 것도 없이 말만 앞서는 부실기업정리가 아니라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내실있는 구조조정이 돼야한다.

민감한 사안인만큼 책임있는 정책당국자들은 말 한마디 한마디에 신경을
써야한다.

이번 이른바 생살부파문은 판정대상이 애매한데서 증폭됐다고 볼 수 있다.

"현저한 부실기업"이 아닌 일반기업이라면 퇴출여부를 은행에서 검토할
긴박한 필요가 없을게 당연하지만,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까지 살릴 것과
죽일 것을 구분하겠다는 얘기가 확대돼 모든 기업에 대한 생사판정이 있을
것으로 받아들여져 파장이 컸다.

물리적으로 보더라도 한달내에 판정할 수 있는 대상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당연히 문제가 표면화된 기업정도가 여기 포함될 것이고 정리될 기업이
많지 않을게 당연하지만 정책당국자들의 당초 표현은 그렇지만도 않았다는데
우선 문제가 있었다.

바로 그런 점에서도 관계자들은 "능숙하지 못한 점"을 반성할 필요가 있다.

부실기업정리는 1차적으로 법정관리 화의신청기업 협조융자대상기업의
갱생가능성을 점검하는 작업으로 국한하는 것이 옳다.

그것만도 결코 작은 일도 쉬운 일도 아니다.

한보같은 것도 정리하지 못한 마당에, 부도도 내지 않은 생짜 기업의
생사판정을 해야할 이유가 없다.

우선 하루빨리 판정대상이 될 기업범주를 보다 분명히해 생살부쇼크로
인한 회오리바람을 잠재울 필요가 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1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