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열리고 있는 아시아.유럽재단 심포지엄에 참석중인 세계은행
(IBRD)의 장 미셸 세베리노 아시아담당부총재가 한국에 대한 긴급자금지원과
관련해 발언한 내용이 우리의 관심을 끈다.

그는 우리나라의 양동칠 주 유네스코대표부대사와의 오찬석상에서 IBRD가
제공키로 한 1백억달러중 아직 제공되지않은 50억달러는 한국이 스스로
요구하지않는 것이 현명하다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왜 그런 발언을 했는지 우리로서는 선뜻 이해하기 힘들다.

그의 발언배경은 두갈래의 해석이 가능하다.

하나는 한국이 긴급한 외환위기국면을 넘겼기 때문에 긴급자금 지원이
필요치않다는 긍정적인 측면이다.

"한국이 대외신인도 제고와 자신감을 국제금융시장에 과시하는 의미"에서
그렇게 해야한다고 말한 것을 보면 그런 해석이 가능하다.

다른 하나는 한국경제에 대한 신뢰가 부족해 지원을 미루려하는게
아니냐는 부정적인 해석이다.

"앞으로 한국이 긴급자금이 필요할 경우에 대비해 유보시킬 필요가
있다"는 언급은 위기재연을 전제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후자쪽의 해석이 더 무게가 있다고 믿는다.

물론 세베리노 부총재가 사석에서 언급한 내용을 IBRD의 공식적인 의견으로
보기는 어렵기 때문에 섣불리 50억달러의 추가지원이 무산될 것으로 속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분명한 것은 자금지원이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IBRD의 자금지원 차질은 우리에게 매우 걱정스런 사태가 아닐 수 없다.

그 자금의 도입을 전제로 계획된 기업구조조정 등 여러가지 사업의 추진이
어려워지고 외환보유계획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선진 13개국의 "제2선 지원"자금 80억달러 도입도 불투명한 마당에
IBRD자금까지 펑크가 난다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최근 무디스사의 국내 19개은행에 대한 신용등급의 하향조정, 부실기업
정리로 인한 국내금융시장의 불안증폭, 원화의 환율상승(평가절하)우려 등
현재 우리를 둘러싼 경제환경은 매우 불안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자칫 잘못되면 제2의 외환위기를 몰고 올 가능성이 있다는 전제하에서
보다 단호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해야할 가장 시급하고 근본적인 대책은 국제사회의 신뢰회복이다.

이를 위해서는 금융및 기업의 구조조정을 포함한 경제개혁조치들이 좀더
체계적이고 효과적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확신을 모든 나라에 확고하게
심어주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근본문제의 해결에 앞서 문제가 되고 있는 IBRD자금을
비롯해 IMF와 선진국들의 2선지원자금을 조기에 확보할 수 있도록 협상노력도
강화해야 한다.

정부는 세베리노 부총재가 말한 내용의 진의와 배경을 좀더 확실하게
파악하여 적절한 대책을 서둘러 강구해야 한다.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1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