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울산 신명해변.

평일 대낮인데도 해변은 낚시꾼들로 가득하다.

입질이 제법 좋다는 방파제쪽은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없을 정도다.

"오히려 요즘 수입이 늘었지요"

낚시점 주인 고봉수(56)씨의 얘기다.

한사람 두사람씩 불어나던 평일 낚시꾼은 이제 여름 휴가철 만큼이나
많아졌다.

실업 한파로 낚시점이 때아닌 특수를 맞고 있다.

하지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모두 실업자는 아니다.

조업단축으로 장기휴가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도 상당수다.

현대자동차 의장3부 김홍일(39) 반장.

그는 지난달 19일을 놀았다.

일을 한 날은 11일.

회사가 한달의 절반인 야간조 근무를 없앤 탓이다.

게다가 라인가동을 완전히 멈췄던 날도 간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달들어서도 열흘동안 집에서 소일했다.

지난 11일에야 첫 출근할 수 있었다.

그가 지난 5일 받아든 4월치 급여는 96만원.

야근과 잔업을 했을 때 받던 김 반장의 월급여는 1백65만원이다.

평월에 비해 40% 넘게 줄어든 셈이다.

"그나마 일이라도 계속할 수 있으면 다행이겠는데..."

회사는 이날 2차 희망퇴직을 받는다는 내용의 공고를 내붙였다.

대규모 정리해고를 하겠다는 예고문이다.

장기근속자인 그의 가슴은 답답하기만 하다.

"나만이라도 예외가 됐으면 한다"는게 그의 절박한 심정이다.

현대백화점(옛 주리원백화점) 삼산점의 이규성 이사는 요즘들어 밤잠을
설친다.

판매부진이 더욱 심각해지고 있어서다.

실업자수가 최대 10만명까지 늘어날 것이라는게 울산상의의 예측.

딸린 식구를 감안하면 적어도 30만명은 수입이 없어진다는 얘기다.

울산 인구 1백만명 가운데 30%다.

유통업체들의 긴장감은 극에 달하고 있다.

그래서 이 이사가 기자에게 처음 던진 질문은 이랬다.

"폐광된 태백시가 이랬을까요"

울산의 명동이라는 성남동 의류거리.

폐업하는 점포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문을 열어놓은 곳도 거의 휴업 상태다.

가게를 내놓아도 팔리질 않는다.

권리금을 포기해도 그렇다.

현대자동차 노조는 지난 13일 노사협의회를 열자는 회사측의 요구에 보충
교섭을 열자고 맞대응했다.

고용안정 문제를 다루자는 것.

산업계는 노조의 이같은 움직임을 파업 수순으로 보고 있다.

"이미 납품이 60%나 줄었습니다. 상황이 이런데 모기업이 파업을 한다면
협력업체들은 줄줄이 부도사태일 수밖에요"

자동차부품업체 광진상공의 정기범 사장은 큰 한숨을 내쉰다.

광진상공에 부품을 대는 2차 벤더 70개사 가운데 이미 6곳은 부도를 내고
쓰러졌다.

울산이 전국 제조업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1.3%, 수출은 13.7%나
된다.

인구비중 2.2%의 도시가 차지하는 비중치고는 너무 크다.

"파업이 일어나면 울산은 회생불능입니다. 한국주식회사의 심장이 멈춰
버리는데 어떻게 나라경제가 되살아날 수 있겠습니까"

울산상의 김관 사무국장의 걱정이다.

말을 달리 하면 한국주식회사의 심장이 뛰어야 나라경제가 산다는 것이다.

누가 한국경제의 심장을 뛰게 할 것인가.

< 울산=김정호 기자 jhki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