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리포트] '팔려가는 미국기업' .. 외국계회사 둔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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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다임러벤츠의 전격적인 미국 크라이슬러 합병 발표에 따른 충격파는
아직까지도 곳곳에서 여진을 일으키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흥미를 끄는 뉴스가 있다.
강력한 로비 단체로 활약해 온 미국 자동차제조업체협회(AAMA)가 "정체성
(identity)의 위기"에 빠졌다는 소식이다.
제너럴모터스(GM) 포드와 더불어 AAMA 회원인 크라이슬러가 졸지에 "외국계
회사"로 옷을 갈아입게 됐기 때문이다.
AAMA 회원규약에는 "외국 기업이 소유 또는 지배하고 있는 회사에는 회원
자격을 주지 않는다"고 규정돼 있다.
규정대로라면 크라이슬러를 내보낸채 GM과 포드 2개사만의 "동네 단체"로
살림을 꾸려가야 할 판이다.
궁지에 몰린 AAMA는 회원 자격에 융통성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규정을
손질하는 작업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AAMA가 겪고 있는 "정체성의 위기"는 자동차 업계 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동차와 더불어 미국에 뿌리를 두고 있는 TV제조업계의 경우는 깡그리
외국 기업들의 손으로 넘어간지 오래다.
지난 94년 7월 "미국 TV의 마지막 자존심"이라던 제니스사가 한국의
LG전자에 소유권을 넘긴 것을 마지막으로 미국 내 TV업체들은 모두 주인이
외국인으로 바뀌었다.
뿐만 아니다.
전통적으로 보수적이고 배타성이 강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는 미국 남부
지방은 아예 외국인 산업공단으로 탈바꿈해 가고 있다.
크고 작은 기업들이 외국업체 손으로 넘어가고 있어서다.
특히 노스 캐롤라이나주의 샬롯에서 조지아주의 애틀랜타를 잇는 85번
고속도로는 독일어를 본 따 "아우토반(Autobahn)"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
도로 일대에 퍼져 있는 수백개의 기업들이 독일인 소유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미국인들이 애써 일으킨 기업들이 속속 국적을 바꾸고 있지만
미국 경제계나 언론들의 반응은 담담하기 이를데 없다.
80년대 후반 록펠러센터와 콜럼비아영화사 등이 일본 등 외국 업체들에
넘어갈 당시 "미국의 혼이 팔려 나가고 있다"며 떠들어대던 법석은 조금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 사이에 미국인들에게 무슨 변화가 일어난 것인가.
하버드대의 로자베스 캔터 교수는 최근 한 논문에서 "미국 기업의 주인이
외국인으로 바뀌어 봤자 달라지는게 없더라"는 경험의 축적을 그 답으로
제시하고 있다.
"기업의 국적이 외국인 소유로 바뀌어도 기업 자체가 외국으로 옮겨지는건
아니라는 사실을 미국인들은 체험으로 깨닫고 있다.
오히려 외국의 자본을 수혈받아 부족한 돈줄을 메우고, 일류 외국기업의
경영기법과 기술 노하우까지 고스란히 이전받는 가외 소득까지 얻고 있다"는
것이 캔터 교수의 진단이다.
외환 위기에 몰려 기업을 속속 외국인들에게 팔아 넘기고 있는 국내
경제계에 미국의 이런 "한 발 앞선 경험"은 타산지석이 아닐 수 없다.
클린턴 1기 행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 하버드대 교수의
말마따나 기업의 국적은 소유자(owned-by)가 아니라 주재지(based-in)에
의해 구분돼야 하는 글로벌화의 물결을 한국도 외면할 수 없는 시대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earthlink.ne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18일자 ).
아직까지도 곳곳에서 여진을 일으키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흥미를 끄는 뉴스가 있다.
강력한 로비 단체로 활약해 온 미국 자동차제조업체협회(AAMA)가 "정체성
(identity)의 위기"에 빠졌다는 소식이다.
제너럴모터스(GM) 포드와 더불어 AAMA 회원인 크라이슬러가 졸지에 "외국계
회사"로 옷을 갈아입게 됐기 때문이다.
AAMA 회원규약에는 "외국 기업이 소유 또는 지배하고 있는 회사에는 회원
자격을 주지 않는다"고 규정돼 있다.
규정대로라면 크라이슬러를 내보낸채 GM과 포드 2개사만의 "동네 단체"로
살림을 꾸려가야 할 판이다.
궁지에 몰린 AAMA는 회원 자격에 융통성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규정을
손질하는 작업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AAMA가 겪고 있는 "정체성의 위기"는 자동차 업계 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동차와 더불어 미국에 뿌리를 두고 있는 TV제조업계의 경우는 깡그리
외국 기업들의 손으로 넘어간지 오래다.
지난 94년 7월 "미국 TV의 마지막 자존심"이라던 제니스사가 한국의
LG전자에 소유권을 넘긴 것을 마지막으로 미국 내 TV업체들은 모두 주인이
외국인으로 바뀌었다.
뿐만 아니다.
전통적으로 보수적이고 배타성이 강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는 미국 남부
지방은 아예 외국인 산업공단으로 탈바꿈해 가고 있다.
크고 작은 기업들이 외국업체 손으로 넘어가고 있어서다.
특히 노스 캐롤라이나주의 샬롯에서 조지아주의 애틀랜타를 잇는 85번
고속도로는 독일어를 본 따 "아우토반(Autobahn)"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
도로 일대에 퍼져 있는 수백개의 기업들이 독일인 소유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미국인들이 애써 일으킨 기업들이 속속 국적을 바꾸고 있지만
미국 경제계나 언론들의 반응은 담담하기 이를데 없다.
80년대 후반 록펠러센터와 콜럼비아영화사 등이 일본 등 외국 업체들에
넘어갈 당시 "미국의 혼이 팔려 나가고 있다"며 떠들어대던 법석은 조금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 사이에 미국인들에게 무슨 변화가 일어난 것인가.
하버드대의 로자베스 캔터 교수는 최근 한 논문에서 "미국 기업의 주인이
외국인으로 바뀌어 봤자 달라지는게 없더라"는 경험의 축적을 그 답으로
제시하고 있다.
"기업의 국적이 외국인 소유로 바뀌어도 기업 자체가 외국으로 옮겨지는건
아니라는 사실을 미국인들은 체험으로 깨닫고 있다.
오히려 외국의 자본을 수혈받아 부족한 돈줄을 메우고, 일류 외국기업의
경영기법과 기술 노하우까지 고스란히 이전받는 가외 소득까지 얻고 있다"는
것이 캔터 교수의 진단이다.
외환 위기에 몰려 기업을 속속 외국인들에게 팔아 넘기고 있는 국내
경제계에 미국의 이런 "한 발 앞선 경험"은 타산지석이 아닐 수 없다.
클린턴 1기 행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 하버드대 교수의
말마따나 기업의 국적은 소유자(owned-by)가 아니라 주재지(based-in)에
의해 구분돼야 하는 글로벌화의 물결을 한국도 외면할 수 없는 시대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earthlink.ne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