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 아인슈타인은 음악을 사랑했다.

특히 바이올린 연주를 즐겼다.

연구에 몰두하다가도 생각나면 바이올린을 꺼내 연주했다.

여행에는 아내보다 애기인 바이올린을 더 함께했다.

별이 총총히 뜬 밤 여객선 갑판에서 연주했는가 하면 독일의 세계적
피아니스트 아르투어 슈나벨과 곧잘 협연했다.

각국을 돌며 이스라엘 독립을 위한 모금연주회도 열었다.

바이올린은 짓궂게도 아름다운 여자 몸매를 본떠 만들었다 한다.

잘룩한 허리위쪽은 젖가슴이 되며 아래는 배와 궁둥이인 셈이다.

소리는 물론 곡선미가 아름답고 생김새 또한 아담하다.

이같은 바이올린을 사랑한 아인슈타인이 미웠던지 부인은 이혼했다.

그러나 그는 나중에 받은 노벨상 상금을 이혼한 부인에게 바쳤다.

며칠전 타계한 미국의 프랭크 시내트라는 중후하고 감미로운 저음의
노래로 뭇 여성의 가슴을 사로잡았다.

"마이웨이"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그가 "한밤의 나그네" "아이 윌
네버 스마일 어게인"등을 달콤하게 부를 때면 공연장의 여성들이
졸도했다고 전한다.

1915년 미국 뉴저지 호보컨에서 가난하게 태어난 그는 15세때 주급
15달러의 아마추어 가수가 된다.

운전기사등 아르바이트를 하며 10여년간 고생을 하다 "올 오어 낫싱"이
히트하면서 본격 가수의 길을 걷는다.

52년 그는 성대파열로 시련을 맞는다.

포기하지 않고 8천달러라는 모욕적인 개런티에 영화 "지상에서 영원으로"에
출연, 아카데미 조연상을 받는다.

나중에 목소리가 회복돼 가수와 배우 양쪽일을 하며 미국 연예계 대부로
성장한다.

네번의 결혼경력에 마피아 연루설이 있기도 한 그는 카지노경영등으로
2억달러의 부까지 쌓아 아메리칸드림을 일궈냈다.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그의 재능과 카리스마, 목소리로 우리시대에
리듬을 주고 꿈을 만들었다"고 애도했다.

클린턴 미 대통령은 "미소지으며 그가 진정으로 그의 길을 갔다"며
조의를 표했다.

고난을 헤치며 살다 간 그가 노래 "마이웨이"처럼 살다 간 것이다.

IMF관리시대를 살면서 대부분 어려움이 많겠지만 이를 이겨나갈 각자의
"마이웨이"를 한번쯤 그려 보면 어떨까.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