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시대 정나라 재상인 자산은 어질고 현명한 정치를 펼쳐 사람들이 그를
"속이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노나라의 밀자천은 단보현을 다스리면서 정성과 충직 믿음의 도덕정치를
실현해 백성들이 "차마 속이지" 못하게 했다.

위나라의 서문표는 강의 신 하백에게 여자를 바치는 악습을 무자비한 방법
으로 물리쳐 새파랗게 질린 관민들로 하여금 "감히 속이지" 못하도록 했다"

중국의 통치스타일에 관한 "삼불기" 이론이다.

정치권력의 행사유형을 학문적으로 연구한 "권력장"(곽존복 저 김영수 역
푸른숲)에는 이같은 통치방법 문제가 다양한 에피소드로 유형화돼 있다.

권력은 무엇이며 권력을 행사하는 방식은 어떠해야 하는가.

이 책은 권력의 본질을 인간과 시대상황의 상관관계를 통해 파악하고 있다.

제왕과 재상 일반관리의 통솔법을 친정형과 위임형, 법치만능형과
호방유생형 등 여러가지 스타일로 분석했다.

서구중심의 이론과 시스템에 의존해온 20세기 정치사를 오랜 세월 다듬어진
동양의 지혜와 비교해서 읽는다면 새로운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

이는 국가통치뿐만 아니라 기업경영 등 모든 조직 운영에도 참고할 만하다.

권력을 떠올릴 때 흔히 "힘을 휘두르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진정한
권력은 "나눔의 미학"에서 비롯된다는게 이 책의 명제다.

모든 일을 직접 혼자 하겠다고 나서는 권력독점형 군주의 "친정"은 부하들을
게으르고 눈치보게 만들기 때문에 역대 철학자와 정치가들은 권력분배형
"위임"을 중시했다.

위임은 권력을 나누고 덜어내는 것을 본질로 하는 동양정치의 근본사상이다.

권력행사는 권한이라는 균형감각을 필요로 하는데 이는 곧 권력행사자의
자질을 뜻한다.

요즘의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재상의 경우를 보자.

재상의 권한과 본질을 지적한 대목은 이렇게 시작된다.

"재상은 정도를 대표한다.

그러나 정도를 주관하는 것은 왕이다.

왕이 재상의 권한을 침범하면 정도는 끝장이다"

재상의 본분에 대해서는 "군주와 권력의 칼자루를 다투지 말라"고 지적한다.

재상의 역할은 "개인적으로 군주의 잘못된 생각을 고치도록 권유하여 바로
잡을 수 있지만, 겉으로 그것을 드러내서는 절대로 안되며 이를 통해 명성을
얻어서는 더욱 안된다"고 한다.

재상의 책무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유능한 인재를 골라 일을 맡기는
것이다.

난세에 대한 경고도 들어있다.

"천하가 태평하면 재상에게 눈을 돌리고 천하가 어지러우면 장수에게
눈을 돌린다"

저자는 이같은 교훈을 오늘에 접목시켜 "백성 위에 군림하지 않으면서도
존경받는 참 권력자"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가를 일깨운다.

그의 지적처럼 "역사는 다 읽지 않은 백과사전"이라는 잠언은 아직도
유효하다.

< 고두현 기자 kd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