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전화] 한국이동통신서비스가 효시 ..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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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이동전화 역사는 지난 84년 5월 아날로그 방식의 차량전화
서비스에서 시작된다.
이 서비스를 위해 이동전화 1호 사업자인 한국이동통신서비스(지금의
SK텔레콤)가 자본금 2억5천만원으로 84년 3월 설립됐다.
지금과 같은 휴대전화가 도입된 것은 지난 88년 7월.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서울지역에서 시작됐다.
그해 9월 부산지역에서 차량및 휴대전화가 개통됐다.
89년 대구 대전 광주등 전국 5대도시에서, 91년 시단위까지 확산, 전국
서비스시대에 들어섰다.
이동전화가 대량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91년에 들어와 국내업체들이
단말기 생산에 나서면서 부터였다.
자체생산을 통해 안정적인 공급기반이 갖춰지고 단말기 기능도 다양해졌다.
이와함께 가격도 크게 떨어지면서 휴대전화는 급속도로 차량전화를
앞질렀다.
이동전화 서비스에서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된 것은 94년 2월 포철과
코오롱을 각각 1,2대 주주로 하는 이동전화 제2사업자(신세기통신)의
등장이었다.
이에따라 이동전화 서비스는 독점에서 경쟁체제로 전환됐다.
신세기통신은 96년 4월 디지털방식의 서비스를 시작한다.
97년 10월에는 개인휴대통신(PCS) 3사까지 가세, 이동전화 시장은 무한
경쟁체제로 들어갔다.
시장규모도 업계간 경쟁구도가 갖춰지면서 급팽창했다.
가입자 1백만명 돌파는 이동전화 서비스시작 11년만인 95년 1월에 이뤄졌다.
그러나 이후 가입자는 96년 3월에 2백만명, 96년 11월에 3백만, 97년
5월에 4백만명, 97년 9월 5백만명에 이를 정도로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그리고 불과 9개월도 안돼 가입자 1천만명을 앞두고 있다.
또 이동전화 가입에 드는 비용도 급격히 떨어졌다.
84년 이동전화 도입당시 가입비용은 4백여만원으로 당시 대기업 대졸신입
사원 1년치 월급보다 많았다.
단말기 가격이 무려 3백만원을 넘었고 설비비 88만5천원, 채권 20만원,
그밖에 허가신청료 장치비 무선국준공검사료 등을 내야 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국내 업체들에 의해 다양한 단말기가 본격 생산되면서
값이 계속 하락했다.
96년 신세기통신의 신규 진출, 97년 10월 PCS 3사의 추가 진입으로 단말기
공짜시대가 열렸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22일자 ).
서비스에서 시작된다.
이 서비스를 위해 이동전화 1호 사업자인 한국이동통신서비스(지금의
SK텔레콤)가 자본금 2억5천만원으로 84년 3월 설립됐다.
지금과 같은 휴대전화가 도입된 것은 지난 88년 7월.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서울지역에서 시작됐다.
그해 9월 부산지역에서 차량및 휴대전화가 개통됐다.
89년 대구 대전 광주등 전국 5대도시에서, 91년 시단위까지 확산, 전국
서비스시대에 들어섰다.
이동전화가 대량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91년에 들어와 국내업체들이
단말기 생산에 나서면서 부터였다.
자체생산을 통해 안정적인 공급기반이 갖춰지고 단말기 기능도 다양해졌다.
이와함께 가격도 크게 떨어지면서 휴대전화는 급속도로 차량전화를
앞질렀다.
이동전화 서비스에서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된 것은 94년 2월 포철과
코오롱을 각각 1,2대 주주로 하는 이동전화 제2사업자(신세기통신)의
등장이었다.
이에따라 이동전화 서비스는 독점에서 경쟁체제로 전환됐다.
신세기통신은 96년 4월 디지털방식의 서비스를 시작한다.
97년 10월에는 개인휴대통신(PCS) 3사까지 가세, 이동전화 시장은 무한
경쟁체제로 들어갔다.
시장규모도 업계간 경쟁구도가 갖춰지면서 급팽창했다.
가입자 1백만명 돌파는 이동전화 서비스시작 11년만인 95년 1월에 이뤄졌다.
그러나 이후 가입자는 96년 3월에 2백만명, 96년 11월에 3백만, 97년
5월에 4백만명, 97년 9월 5백만명에 이를 정도로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그리고 불과 9개월도 안돼 가입자 1천만명을 앞두고 있다.
또 이동전화 가입에 드는 비용도 급격히 떨어졌다.
84년 이동전화 도입당시 가입비용은 4백여만원으로 당시 대기업 대졸신입
사원 1년치 월급보다 많았다.
단말기 가격이 무려 3백만원을 넘었고 설비비 88만5천원, 채권 20만원,
그밖에 허가신청료 장치비 무선국준공검사료 등을 내야 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국내 업체들에 의해 다양한 단말기가 본격 생산되면서
값이 계속 하락했다.
96년 신세기통신의 신규 진출, 97년 10월 PCS 3사의 추가 진입으로 단말기
공짜시대가 열렸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2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