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회사에 다니다 작년말 정리해고를 당한 김수일(45)씨.

그는 4개월간의 방황끝에 새벽 우유배달을 시작했다.

낮에는 제빵기술을 배우며 열심히 살려고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해고의 강풍에서 살아남은 대기업 과장 박종수(37)씨의 마음도 카오스
(chaos) 그 자체다.

뭔가 달라져야 하는건 분명한데 솔직히 어떻게 변신해야할지 도무지
모르겠다.

"과연 내가 살아남을까"

자신이 없다.

"짤린 자"나 "살아남은 자"

모두가 곤혹스럽긴 마찬가지다.

IMF(국제통화기금)체제는 이렇게 한국인의 생활 스타일과 가치관 모두를
혼돈상태로 몰아넣고 있다.

IMF는 우선 "우리" 의식을 뒤흔들고 있다.

그에 따른 현실도피,복고 경향도 뚜렷하다.

계층간 갈등이 증폭된다.

한탕주의도 잠재돼있다.

해외 이민과 귀향자가 줄을 잇는다.

낚시와 등산인구도 하루가 다르게 급증한다.

이혼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는 스스로 생을 포기하는 사람도 적지않다.

국제화가 외쳐지는가 하면 국수주의가 힘을 얻기도 한다.

이같은 혼돈속에서도 그러나 사회 구석구석에선 새로운 생활문화, 새 가치관
이 싹트고 있다.

다름아닌 "백 투더 베이직"(Back to the Basic), 그리고 "심플 라이프"
(Simple Life)다.

거품을 빼고 기본에 충실한 생활, 여기엔 물론 실용성과 합리성이 스며
있다.

그렇다.

IMF는 바로 실사구시다.

소비문화가 그 대표적 예다.

어느샌가 충동구매나 외상구매가 줄어 들었다.

유명브랜드보다는 실속상품을 즐겨 찾는게 일상화되고 있다.

체면문화가 사라지고 관혼상제 또한 간소화되는 추세다.

전문가가 존중받으며 "주는만큼 일하고 일한만큼 받는" 프로시스템도
만들어지고 있다.

평생직장 개념이 급속히 파괴되면서 직업에는 귀천이 없어지고 있다.

회사를 우선하는 취사에서 직종을 먼저 생각하는 취업으로 바뀐다.

그런 와중에서 다양성이 존중되는가 하면 "우리" 대신 "나"로 생활의
무게중심이 옮겨간다.

남의 눈은 의식할 필요가 없어진다.

투명성도 "베이직"의 한 축이다.

촌지와 떡값 문화가 사라지고 있다.

로비와 인맥이 힘을 잃어가고 있다.

기업에선 자연히 접대비가 줄어든다.

선물문화도 바뀌고 있다.

"권력과 금력"이라는 성역도 없어진다.

새로운 가치관은 또 자생력없는 기업을 도태의 길로 이끌고 있다.

외형 중심에서 수익위주로 경영이 바뀔수밖에.

정부도 덩치를 줄이고 효율적인 국정으로 몰아가지 않곤 더이상 "IMF
국민"의 지지를 받을수 없다.

이 모든 것이 완결형이 아니다.

''진행형''이다.

진행형은 앞날에 대한 통찰과 결단을 요구한다.

변화의 큰 흐름을 읽는 눈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IMF가 끝나더라도 결코 "옛날"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봉급삭감과 자산디플레로 적게는 30%,많게는 50% 깍인 소득과 재산이
원상회복되더라도 과거가 반복될리 없다.

아니 1인당 국민소득이 다시 1만달러, 2만달러가 되더라도 1~2년전의
''흥청망청''으로 되돌아갈리 만무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비전과 희망이 생긴다.

우리 모두 5년, 10년후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자.

희망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

삶과 일에 대한 열정과 새로운 가치관으로 무장한 국민으로 탈바꿈하는 것.

이것이 진정 IMF를 이기는 길이다.

이 시리즈를 기획한 것도 바로 이런 뜻에서다.

< 강현철 기자 hckang@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