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 경제위기는 각국의 경제적 여건이 취약한 때문인가.

아니면 세계경제 혹은 아시아 지역경제가 갖고 있는 문제점이 일부
국가에서 촉발돼 연쇄반응을 몰고 온 것인가.

이같은 질문에 대한 해답은 단순히 위기의 원인을 캐내는데 국한되지 않고
태국 인도네시아 한국 등 동아시아 각국의 구조조정을 위한 해법을 제시해
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한국경제신문은 해답의 단초를 제공하기 위해 지난 15일 경북대및 일본
교토대와 공동으로 "세계 자본주의의 변동과 동아시아의 경제위기"를 주제로
국제 학술심포지엄을 가졌다.

한국과 일본 양쪽의 대표적인 발표논문을 요약한다.

< 정리=정태웅 기자 redae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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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환불안과 동아시아 위기 ]]


모토야마 요시히코 < 교토대 교수 >

전세계의 하루 외환거래액은 1조달러를 넘는다.

이는 전세계 무역액의 20배이다.

현재 국제통화기금(IMF)에 가입하고 있는 나라가 1백40개국을 넘고 있지만
이들 여러나라의 외환보유고의 합계는 1조달러 정도다.

요컨대 세계의 외환보유고는 세계 외환거래의 하루분에 간신히 이르는
액수밖에 안된다.

더구나 환거래의 80%는 실수요에 기초하지 않는 금융기관끼리의 거래다.

외환거래의 실수요는 무역결제와 해외직접투자, 그리고 외국주식취득인데
이들 전부를 합계해봐도 전체 거래액의 20%에 지나지 않는다.

환거래의 증가경향은 멈출줄 모르고 있다.

그것은 무역 투자라고 하는 실수요의 증가보다도 수배나 빠른 속도다.

시장, 특히 선물시장에서 투기꾼의 존재는 시장의 유동성을 증가시켜주기
때문에 중요하다.

옥수수, 동, 주식에 대해 팔 사람이 팔고 싶지만 살 사람이 없을 경우
투기꾼은 그 상품을 본래의 목적에 사용하는 것이 아니고 살 사람이 생길
때에 비싸게 팔기 위해서만 사둔다.

이러한 투기꾼은 수요를 갖는 보통고객이 상황변화에 어떻게 반응할까,
시장이 어떻게 대응할까를 예측해서 투기행동에 나선다.

투기를 통해 이익을 얻는 것이 있다면 손해를 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시장에 유익한 유동성을 가져다 주며 무엇보다도 위험
(risk)을 부담한다.

고객은 사업실패라든가 기업도산 같은 위험을 회피하려 한다면 이를
투기꾼에게 판다든지 투기꾼으로부터 산다든가 한다.

그렇게 해서 위험을 그들에게 돌리는 것이 가능하다.

상품선물의 경우 이렇게 해서 시장의 안정화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거래의 80%가 실수요에 기초하지 않은 매매인 외환시장은 끝없는
제로-섬 게임에 가까울뿐으로 안정화경향을 보이지 않아 왔다.

일반적인 시장은 수요와 공급간의 불일치가 "보이지 않는 손(가격)"에 의해
해소되고 안정을 되찾는다면 실수요에 기초하지 않는 외환시장은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그곳에서는 시장의 변화에 대해서 투기꾼이 수동적으로 예측하며 행동하는
것보다는 투기꾼 자신이 시장에 변화를 가지고 들어갈 가능성이 대단히
강하다.

무역의 20배, 자본거래의 7배, 무역과 자본을 합계한 액수의 5배나 되는
규모를 가진 환결제의 투기압력에 각국 중앙은행이 저항하는 것 따위는
불가능하다.

각국의 수출경쟁력을 더욱 더 크게 결정하는 환시가까지도 투기꾼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

요컨대 외환시장은 상품시장과는 완전히 다른 것에 의해 변화되고 있다.

그러한 변화를 무시하고 투기가 시장의 교란요인이 아니라 균형화
요인이라고 언제까지나 교과서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어도 좋은 것일까?

또 외국환을 취급하는 기업의 환위험을 경감시켜주는 것이 각종 파생상품
(데리버티브)이라고 말해지지만 그것은 정말로 환위험을 경감시키는 것일까?

옵션을 샀던 고객으로서는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옵션을 매도한
금융기관으로서 본다면 자기가 지는 위험의 크기는 바로 큰 금융기관도
하룻밤에 도산시켜버릴지도 모르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GDP를 상회하는 거액 옵션거래의 90%가 불과 7개 은행에
독점돼버리고 있다.

그들 은행의 일부가 붕괴될 때의 시스템적 위기에 대해서는 그다지
논의되지 않고 있다.

더구나 그 정도가 파생상품 거래가 있을지 정확한 자료(데이터)부터
입수되지 않을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외환시장에 의한 투기가 균형화요인과는 상당히
멀다는 것이다.

태국 바트화가 고정환율제에서 변동환율제로 바뀐 지난해 7월 일부
국제투기꾼(핫머니)들이 바트화를 공략, 바트화 폭락과 동아시아 외환위기를
가져왔다는 지적이 수차례 제기되어온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