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언어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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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사람들은 말수는 적게, 어투는 꼼꼼하게, 목소리는 낮게, 어조는 느리게
하는 것을 언사의 지침으로 삼았다.
말 수를 적게 하는 것은 "실천"을, 어투를 꼼꼼히 하는 것은 "진실"을,
목소리를 낮게 하는 것은 그 말에 대한 "책임"을, 어조가 느린 것은 그 말을
한 후의 "반향"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설득의 시대"인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요즘 사람이 그런식으로 말을 했다가는 출세는 커녕 낙오자가 되기에 꼭
알맞다.
홍수처럼 밀려드는 정보를 분석해 최대한으로 이용하고 자기 능력을 한껏
선전해 남을 뛰어넘는 방편으로 삼아야한다.
청산유수와 같은 말솜씨에 위트와 유머를 종횡무진으로 구사하는 사람이
대중의 인기를 독차지한다.
말을 교묘하게 꾸미고 가능한한 과장해 상대방을 압도하는 것이 소위
유능한 사람의 기준이다.
요즘 막바지에 접어든 6.4지방선거 유세장에서 터져나오는 후보나 지원
유세자들의 고삐풀린 발언내용을 보면 이런 세태가 그대로 나타난다.
그들에게는 자기가 말한 내용의 실천가능성이나 진실여부는 2차적인 문제다.
책임은 아예 질 생각도 없으니 그것에 대한 반향은 염두에 둘리도 없다.
득표만을 노리다 보니 정책대결은 사라지고 흑색선전 상호비방만이 난무하고
있다.
"충청도당"이니 "경상도당"이니 하는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말들이 다시
횡행하고 후보들끼리 "신나치당" "카멜레온" "가정파괴범" "내시" 등의
원색적 표현으로 깎아 내리다 못해 "공업용 미싱" 운운하는 험한 말까지
나왔다.
이렇게 난무하는 언어폭력을 듣고 있노라면 이나라의 정치인들이 이성을
잃은 나머지 광기까지 부리고 있는듯 하다.
"비방을 그치게 하는데는 변명하지 않는 것이 최상의 방책"이라는 옛 말이
있다.
비방에 대응하면 또 비방이 생기게 마련이다.
현행 선거법상 근거없이 상대후보를 비방하거나 허위사실을 유포하면
3년에서 7년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돼있다.
그러나 사실상 거의 사문화돼있는 이런 법 이전에 유권자들은 어느 후보가
거짓을 말하고 있는지를 훤히 알고 있다.
"말은 바로 혀를 베는 칼(언시할설도)"이라는 말도 그래서 생겼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30일자 ).
하는 것을 언사의 지침으로 삼았다.
말 수를 적게 하는 것은 "실천"을, 어투를 꼼꼼히 하는 것은 "진실"을,
목소리를 낮게 하는 것은 그 말에 대한 "책임"을, 어조가 느린 것은 그 말을
한 후의 "반향"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설득의 시대"인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요즘 사람이 그런식으로 말을 했다가는 출세는 커녕 낙오자가 되기에 꼭
알맞다.
홍수처럼 밀려드는 정보를 분석해 최대한으로 이용하고 자기 능력을 한껏
선전해 남을 뛰어넘는 방편으로 삼아야한다.
청산유수와 같은 말솜씨에 위트와 유머를 종횡무진으로 구사하는 사람이
대중의 인기를 독차지한다.
말을 교묘하게 꾸미고 가능한한 과장해 상대방을 압도하는 것이 소위
유능한 사람의 기준이다.
요즘 막바지에 접어든 6.4지방선거 유세장에서 터져나오는 후보나 지원
유세자들의 고삐풀린 발언내용을 보면 이런 세태가 그대로 나타난다.
그들에게는 자기가 말한 내용의 실천가능성이나 진실여부는 2차적인 문제다.
책임은 아예 질 생각도 없으니 그것에 대한 반향은 염두에 둘리도 없다.
득표만을 노리다 보니 정책대결은 사라지고 흑색선전 상호비방만이 난무하고
있다.
"충청도당"이니 "경상도당"이니 하는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말들이 다시
횡행하고 후보들끼리 "신나치당" "카멜레온" "가정파괴범" "내시" 등의
원색적 표현으로 깎아 내리다 못해 "공업용 미싱" 운운하는 험한 말까지
나왔다.
이렇게 난무하는 언어폭력을 듣고 있노라면 이나라의 정치인들이 이성을
잃은 나머지 광기까지 부리고 있는듯 하다.
"비방을 그치게 하는데는 변명하지 않는 것이 최상의 방책"이라는 옛 말이
있다.
비방에 대응하면 또 비방이 생기게 마련이다.
현행 선거법상 근거없이 상대후보를 비방하거나 허위사실을 유포하면
3년에서 7년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돼있다.
그러나 사실상 거의 사문화돼있는 이런 법 이전에 유권자들은 어느 후보가
거짓을 말하고 있는지를 훤히 알고 있다.
"말은 바로 혀를 베는 칼(언시할설도)"이라는 말도 그래서 생겼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30일자 ).